기후변화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2100년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정상적인 성장 경로 대비 20% 넘게 급감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떠안더라도 하루빨리 강력한 대응에 착수하는 것이 경제에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기상청이 4일 공개한 ‘기후변화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한국 GDP는 2100년경 기준시나리오 대비 21%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24~2100년 연평균으로는 0.3%포인트씩 깎인다. 분석에 활용된 기준시나리오는 녹색금융협의체(NGFS)가 국내 인구 성장 추세를 바탕으로 제시한 성장 경로로, 기후변화 충격 없이 경제가 과거 추세처럼 정상 성장하는 경우를 가정한다.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도 이내만 오르도록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경우엔 성장에 타격을 덜 받았다. 탄소 가격 상승 여파로 2050년경 GDP는 기준시나리오 대비 13.1% 감소한다. 하지만 이후 친환경 기술이 발전하고 기후 피해가 완화해 2100년 기준 10.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24~2100년 연평균 GDP 성장률 하락 폭도 0.14%포인트로 축소됐다.
산업별로 보면 정유·화학·시멘트·철강 등 고탄소 산업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위험’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1.5도 이내 억제’ 가정에서 탄소 가격이 상승하는 2024~2050년 중 부가가치가 급감했는데, 2050년 이후에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 상용화로 비용이 줄어 점차 충격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농업·식료품·건설업 등은 기후변화 자체가 주는 물리적 충격인 ‘만성 위험’에 취약하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손을 놓을 경우 이 업종의 부가가치는 온도 상승과 강수 피해가 증가하는 2100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물가도 GDP와 마찬가지로 2050년 전후에는 전환 위험, 2100년에 다다를수록 만성 위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5도 이내 억제’ 대응 때 2050년 생산자물가는 기준시나리오 대비 6.6%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안정돼 2100년 1.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기후변화 무대응 땐 글로벌 농산물 공급 충격 등으로 2100년 생산자물가가 기준시나리오 대비 1.8% 올랐다. 무대응은 2100년까지 탄소 가격을 ‘제로(0)’로 설정해 물가 변동 폭이 적어 보이지만, 기후 대응 경로에서 물가가 점차 안정되는 것과 달리 2100년 이후에도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한은은 덧붙였다.
기후변화 무대응 땐 자연재해 피해 역시 크게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00년 태풍 피해액은 9조7,000억 원, 홍수 피해액은 3조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1.5도 이내 억제’ 대응보다 각각 38%, 52% 큰 규모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조기에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로운 전략”이라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초기에는 상당한 정책 비용을 수반하나, 이후 기후변화 위험 충격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국내 경제 회복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탄소 가격 상승의 충격이 제조업 전반으로 파급될 수 있는 만큼 저탄소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