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환자의 병원 선택 이렇게…경증질환, 의원 진료가 유리

입력
2024.1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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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환이어도 병원에 따라 환자 부담 커져
병원 간판만으로도 전문의 여부 판단 가능
유명 병원 재직 여부가 전문성 나타내진 않아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환자의 경우 종합병원에선 6개월에서 1년 분량의 약을 처방합니다. 진료 주기가 길다 보니 차도가 어떻게 되는지 알기 힘들어요. 환자에게 좋은 의료라고 보긴 힘들죠.”

최근 ‘똑똑한 환자는 병원 선택이 다르다’는 책을 낸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모든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을 먼저 찾을 필요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만성질환이라면 거주지 인근 의원에서 자주 상태를 살피고 관리를 받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야 만성질환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다리 혈관이 좁아지는 말초혈관질환, 콩팥 기능이 떨어져 앓는 만성신부전 등 큰 병으로 번지는 걸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동구 소재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만난 박 교수는 “암과 심장병 같은 중증질환에 대한 전문성은 상급 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보다 부족할 수 있지만 당뇨병과 고혈압, 위궤양과 같이 흔한 질환에 있어서는 의원의 전문성이 결코 뒤처진다고 볼 수 없다”며 “필요할 때 의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접근성, 의료진과의 친밀성도 의원이 가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상급종합병원은 희귀질환과 난치병, 입원이 필요한 중증질환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종합병원으로 현재 전국에 47곳이 운영 중이다. 종합병원은 100개 병상 이상을 갖춘 중급 규모의 병원을 일컫는다.

동네 의원을 이용하면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외래진료에 대한 본인부담금 비중은 병원 규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원은 30%지만 종합병원은 50%, 상급종합병원은 60%로 높아진다. 경증질환 환자가 종합병원 이상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약제비도 종합병원은 40%, 상급종합병원은 50%로 상향 조정(의원은 30%)된다. “경증질환에 대한 전문성은 의원과 대학병원이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의료비용은 더 부담해야 하죠. 똑똑한 환자라면 처음부터 종합병원 이상급 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박 교수는 이어 “병원 간판만으로도 의사의 전문성을 확인할 수 있다”며 똑똑한 환자가 선택해야 할 의원, 의사에 대해 말을 이었다. 우선 전문과목의 유무다. 의원 간판에 전문과목을 넣는 것은 해당 과목의 전문의만 할 수 있다. 서울내과의원은 내과전문의가, 서울의원은 전문의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일반의가 진료를 보는 병원이란 뜻이다.

이와 함께 표기되는 진료과목은 해당 의사의 전문과목은 아니지만 환자 진료가 가능한 분야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서울내과의원 진료과목 소아과, 이비인후과’라고 간판에 적혀 있다면 내과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으로 소아과와 이비인후과도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의원 진료과목 소아과 내과’라고 간판에 적혀 있다면 일반의가 진찰하는 의원으로 소아과와 내과 진료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동네 의원은 소유주인 의사와 월급을 받는 고용된 의사(봉직의)가 함께 진료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땐 의원 원장에게 진료를 받는 게 환자 관리 관점에서 더 좋다”고 말했다. “봉직의는 매출 압박을 받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검사를 권할 때가 있어요. 반면 원장은 평판 관리를 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진료를 봐야 하니 과잉진료 우려가 덜하죠. 봉직의와 달리 자주 바뀌지 않는 것도 장점이에요.”

“특정 학회 회원임을 경력으로 내세우는 것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가입신청서와 일정 회비만 내면 의학회의 일반 회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의학회 소속이라고 해서 해당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라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해당 의사의 관심사를 알 수는 있지만 학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전문성을 나타내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인지도가 있는 병원에서의 재직 여부는 진료를 볼 의사를 선택할 때 참고할 만한 지표가 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내과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 등이 표준화돼 있어 인지도 높은 병원의 재직 여부를 구분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외과는 경험이 많은 의사가 수술도 잘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과거 재직한 병원 인지도와 상관없이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의원임에도 진료시간이 짧은 의사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종합병원 교수들이 2~3분 진료를 보는 건 특정 진료과목에 집중된 환자를 보기 때문”이라며 “포괄적으로 진료를 하는 의원에서 짧은 시간에 진료를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하지 않은 주사제를 처방하거나 곧바로 수술‧입원을 권하는 의사, 처방하는 약제의 수가 많고 약을 자주 바꾸거나 특정 약국을 지정해주는 의사도 주의해야 한다.

박 교수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의사를 신중하게 선택했다면 해당 의사를 신뢰하고 의사의 처방에 적극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선 조바심이 생기니까 여러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고속열차를 탈 수도 있고, 버스나 비행기로도 갈 수 있어요. 같은 질환이라도 의사마다 선호하는 치료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보는 게 오히려 혼선을 키울 수 있어요. 의사 선택은 신중하게 하되, 일단 택했다면 믿고 따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