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서 돌아온 김신록의 신들린 연기...'지옥2' 제작진이 할 말을 잃었다

입력
2024.11.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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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시즌2의 배우 김신록 인터뷰]
2004년 연극으로 데뷔한 20년 차 배우
'지옥' 연기로 얼굴 알린 후 영화 등 출연
늘 연기 공부하며 "내 이름 걸고 내 연기"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시즌2. 지옥에 다녀온 ‘부활자’ 박정자(김신록)는 ‘지옥은 어떤 곳이냐’는 물음에 텅 빈 눈동자로 이같이 답한다. ‘지옥' 시즌1(2021)에서 모든 걸 걸고 아이들을 지키는 엄마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신록(43)은 시즌2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그는 “지옥에 다녀왔고 4년간 감금돼 있었으니 말소리가 균질하지 않게 했고, 해체돼 있고 조각나 있는 박정자를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들은“김신록의 연기 파티” “신들린 연기” “얼얼한 연기”라는 찬사를 보냈다. 김신록을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연기에 충격받아 남성 배역에 캐스팅

‘지옥’은 유령 같은 형체로부터 사망 시간을 통보받은 사람들을 괴물들이 무자비하게 죽이는 현상을 다룬 스릴러 드라마다. 김신록이 연기한 박정자는 이 현상으로 사망했다가 되살아난 인물. 몽롱하게 부유하는 듯한 그의 연기는 첫 촬영에서 바로 인정받았다. “첫 장면을 찍었는데 (제작진이) 아무 말도 없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제 연기 톤을 두고 모니터 앞이 술렁였는데, 연상호 감독이 ‘요즘 김신록 배우 기세가 좋으니 믿고 가보자’고 했다고 들었어요. 저를 신뢰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김신록의 연기는 베테랑 여성 배우들과의 호흡으로 더욱 빛났다. 광신도 역할로 화제를 낳은 문근영, 드라마 전체를 이끄는 변호사 김현주, 국가 권력을 대변하는 정무수석 역할의 문소리의 빼어난 연기에 김신록의 연기까지 더해져 드라마 몰입도를 극대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4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후 ‘지옥1’ 연기로 처음 얼굴을 알린 김신록은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에서는 의병 ‘범동’ 역을 맡았다. 이 역할은 남성 캐릭터였지만 ‘지옥1’ 김신록의 연기에 “충격받은” 김상만 감독이 그를 캐스팅해 배역의 성별을 바꿨다.


민폐일 정도로 연기 못해 공부, 또 공부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김신록은 1학년 때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 연기를 했다. 4학년이 되자 고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앓기 시작했다. 강의실까지 걷기도 힘들 만큼 몸이 아팠지만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어 1년간 고향 광주에서 지냈다. 돌이켜보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은 시간에 갇혀 있던 그를 치유한 건 열두 살 어린 초등학생 동생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같이 보다가 ‘너는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해?’라고 물었더니 동생이 ‘어제 죽었으면 동물농장 못 봤지’라고 대답을 했어요. 저한테는 큰 깨달음이었고, 그 뒤로 회복해서 서울로 돌아왔어요.”

김신록은 대학 졸업 후 대학로 극단에 들어갔지만 “민폐다 싶을 정도로 연기를 너무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기를 계속 공부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을 받아 2년 동안 외국 여러 극단을 다니며 연기를 배웠다. 2013년에는 연기 방법론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집 보증금을 빼 1년 동안 미국 뉴욕의 한 극단이 운영하는 실기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그는 연극계에서 “내 이름 걸고 내 연기”를 해왔다.

“과거는 안 돌아보고, 늘 지금이 제일 좋다”는 김신록은 미래에도 아무 경계를 긋지 않았다. “저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막 활성화하던 때 OTT와 함께 성장한 배우예요.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장르를 두루 연기해 보고 싶어요.”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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