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 촛불'을 지키던... 다부동 전사 경찰관, 74년 만에 가족 품으로

입력
2024.11.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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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임규 조카인 임진원 경사
유학산서 유해 발굴... 가족 DNA 일치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왔는데..."

세 살 딸과 두 살 아들을 두고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는 70년 넘게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집엔 사진 한 장 없었던 탓에 얼굴조차 희미했지만, 딸 임정순(77)씨는 아버지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임씨는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투'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됐단 소식을 듣고, 보건소에 자기 유전자(DNA) 검사 시료를 제공했다. 몇 년이 지나도 들려오는 소식이 없자 3년 뒤, 간절한 마음에 다시 DNA 검사를 의뢰했다.

그러고도 기다림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그사이 한 살 어린 동생은 끝내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일, 임씨는 드디어 영면에 든 아버지 유해를 맞이했다. 헤어진 지 74년 만이다.

경찰청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고 임진원 경사에 대한 유해 안장식을 진행했다. 유가족과 조지호 경찰청장, 경기북부경찰청장, 국립서울현충원장, 유가족 단체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유가족 거주지인 동두천시부터 현충원까지 동행하고 1계급 특진을 추서하며 예를 갖췄다.

임 경사는 3.1 운동 민족 대표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임규의 조카이고,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인 임익순(육사 2기) 대령의 당숙이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국군 병력이 부족하자 6만3,000여 명의 경찰관이 전쟁에 동원됐는데, 임 경사도 참전했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경찰관 중 3,100여 명이 사망했고 7,000여 명이 실종됐다.

임 경사는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격전으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1950년 8월)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칠곡 유학산 일대 고지에선 방어선 확보를 위한 전투가 약 한 달간 치열하게 벌어졌다. 국군 1사단과 미군은 다부동 일대에서 인민군 3개 사단 공격을 막고 방어선을 확보해 대구를 지켜냈다.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위기에서 거둔 승전이고, 여기에 인민군 주력을 잡아두면서 더글러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도 가능했다.

임 경사 유해도 유학산 일대에서 발견됐다. 고향이었던 전북 김제에서 200㎞ 넘게 떨어진 곳에서 50년 넘게 묻혀 있던 임 경사 유해는 2000년이 돼서야 빛을 봤다. 그러나 유해 발굴 이후에도 신원을 특정하긴 쉽지 않았다. 당시 DNA 감식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탓에 발굴 이후 신원 확인까지 24년의 세월이 더 소요됐다. 74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임씨는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임씨는 "머나먼 타향 땅에 묻혀 계시던 아버지를 이제라도 서울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사·순직 경찰관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6일 추념식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쟁 당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다 장렬히 산화한 전사 경찰관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그 공훈을 기리기 위해 유해 발굴 사업과 현충 시설 정비사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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