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크기 이상의 문신이 있을 경우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5㎝ 이상의 문신이 있으면 입장이 제한됩니다(문신이 가려지는 래시가드, 운동복, 패치 등을 착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체에 타인에게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조성할 수 있을 정도로 과도한 문신이 있는 고객은 출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 주요 고급 호텔들이 수영장·사우나·헬스장 등 부대시설에 일정 크기 이상의 문신이 있는 사람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공지를 잇달아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른바 '노타투존'(No Tatoo Zone·문신 금지 구역)이다.
이 같은 노타투존은 10여 년 전 카페나 식당 등에서 시작된 '노키즈존'(No Kids Zone·어린이 출입 금지 구역)의 아류다. 노키즈존의 등장 이후 노시니어존·노아줌마존·노아재존·노교수존 등 수많은 변형 공간이 등장했고, 앞으로도 특정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의 진입을 불허하는 장소의 양태가 더 다양해지고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예 '노섬바디존'(No Somebody Zone·어떤 사람이 없는 구역), 즉 '섬바디' 자리에 특정 대상을 넣어 언제든지 차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차별 시정을 권고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노시니어존과 같은 공간이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인권위는 2017년 11월 13세 이하 아동의 이용을 제한한 한 양식당에 대해 "헌법상 영업의 자유가 보장되나 이 같은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집단을 특정한 공간 또는 서비스 이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경우 합당한 사유가 인정돼야 한다"며 노키즈존을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또 지난달 28일에는 65세 이상 고령 회원이 스포츠클럽 가입을 거절당한 것과 관련해 "안전사고 예방이라는 목적은 정당하나 스포츠시설에서의 안전사고 발생률이 반드시 나이에 비례한다고 볼 수 없고, 상업시설 등의 이용에서 노년 인구의 일률적 배제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정관 개정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여론의 흐름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노키즈존에 대해선 상업시설에서는 영업의 자유 또는 해당 공간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다른 손님들의 행복 추구권이 더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2월 1,000명에게 노키즈존에 대한 찬반 입장을 물어본 결과, 약 73%가 '업장 주인의 자유에 해당하고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이유로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어린이와 어린이 동반 손님을 차별하는 행위이고 출산 및 양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반대한 비율은 18%에 그쳤다.
이 같은 여론을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다. 김정수 단국대 법학과 초빙교수는 2020년 '아동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헌법적 과제-'노키즈존 관련 정당성 논의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영업주가 영업공간을 노키즈존으로 운영할 자유가 아이들 또는 부모의 행복추구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노키즈존이라는 영업의 자유가 침해되면 영업주는 그로 인해 영업과 생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과 부모는 다른 대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기본권 침해를 피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인권 분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간 분리 방식의 차별이 영업주의 기본권 보호보다는 편의주의에 따른 결과에 가까우며, 결국 광범위한 차별 공간을 양산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 조덕상 변호사는 "영업장에서 벌어지는 아동의 안전사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도 무조건 당사자인 어린이의 출입이나 이용을 막는 것은 위험의 해소가 아닌 회피"라면서 "이런 논리라면 노인이나 장애인, 더 나아가 잠재적 부상 우려가 높은 모든 고객들에 대해 동일하게 조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령 등의 범주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들어올 수 있게 하거나 없게 하는 등 공간을 분리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이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수 있다"면서 "이런 공간을 하나씩 용인하게 되면 깨진 유리창 이론1처럼 언젠가 우리에게도 차별이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차별 공간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우호적인 여론에 편승해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 변호사는 "인권위의 권고는 사실상 강제력이 전혀 없는 데다 단순히 캠페인이나 교육을 통해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차별금지법 입법 등 적극적인 법적 규제를 통해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업주와 손님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가기보다는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단순히 편의에 의해 누군가의 출입을 일괄적으로 막기보다는 출입 허용과 불허에 대한 원칙과 예외가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면서 "예외적으로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출입을 불허할 때는 영업주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분명히 입증해야 할 것이고,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해당 공간에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