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보다 위험한 국정의 가벼움

입력
2024.10.31 19:30
26면
대통령 부부 처신이 이렇게 가벼워서야
의혹들 결국 소통 능력, 정치력 부족 탓
국정에서는 무게감 있고 신중한 행보를

명태균 의혹이 온 나라를 덮을 기세다. 대통령에 이어 김건희 여사의 녹취 목소리까지 들었단 이도 한둘이 아니라 파장을 종잡기 힘들다. 의혹 자체도 심각하지만 정말 위험한 건 의혹에 가려진 진실이다. 피터 드러커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대통령 부부의 처신이 이럴 정도였나 싶게 가볍다는 점이다. 사적 통화와 만남이 녹취되고 폭로되는 것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심각성은 대통령의 가벼움이 국정에선 깊은 고민이 배지 않은 형태로 발견되는데 있다. 명품백 사건, 도이치모터스 사건도 별게 아닌 듯 말했고, 의대생 증원 문제도 중대하게 보지 않고 시작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가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한 4대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막상 ‘충분한 준비 없는 추진’을 지목한 것도 이런 취지다.

대통령의 가벼움도 스타일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국정에서 가벼움은 소통 능력과 정치력 부족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실제로 일방적 소통과 협치 없는 강제적 정책이 민생부실, 민심이탈로 이어진 것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민망한 외교적 결례나 방향성이 부재한 경제정책이 위기대응력에 의구심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도미노 게임처럼 충분한 검토 없는 졸속은 오락가락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흔들고 국정능력까지 의심받게 한다.

대통령의 가벼움은 대통령에만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 따라 하기인 양 단호히 대응하고 조치할 문제마저 넘어가 국가기강을 해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 하나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대통령 관저 공사의 계약, 관리 총책임자인 행안부 장관의 사례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경찰에 지휘권이 있으나 관저 공사의 불법, 탈법은 장관 책임이 된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에 이상민 장관은 사과 한마디 없고, 국감에선 감사보고서마저 읽어보지 않았다며 당당해했다. 장관의 책임이,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언행에선 오만과 무능이 겹쳐 보인다.

공개된 부산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일주일 앞두고 판세를 분석한 외교부 공문도 다르게 보기 어렵다. 공문은 사우디와 접전을 거쳐, 2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유치 성공을 장담하고 있다. 3급 비밀문서 공개란 논란에도 불구, 항간의 소문으로 돌던 무능이 그대로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29표란 망신을 당한 책임과 반성까지 비밀로 덮어서야 국정의 기강이 설 리 없다.

대선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유지보다 15%포인트가량 높았는데 실제 표 차이는 0.73%(24만 표)포인트에 그치자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량이 그만큼 못 미쳤다는 것과, 이재명 대표의 돈 풀기 공약의 효과라는 것이다. 임기 절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어느 해석이 맞느냐의 문제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 게 됐다.

빠른 의사결정과 정책 설정은 대통령제의 장점 중 하나로 친다. 과거 대통령들은 리더십을 통해 이 같은 제도적 역할까지 수행했다. 물론 정치권력의 정책 개입을 적폐나 인치로 께름칙하게 여길 만큼 지도자 리더십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렇다 해도 국정운영 능력을 향상시키고 민생을 해결하려면 대통령부터 무겁고 신중한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의혹에 대해 여론이 잠잠해질 때만 기다리며 침묵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을 하는 건 발목 잡히는 일일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가 없는데 ‘사실’을 믿고 안 믿고의 신념의 문제로 치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