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이 우크라이나전 파병 요청 성명을 냈습니다. 북한군에 대한 러시아 파병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군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들이 전장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탈북민 단체에 따르면 ‘만일 파병이 가능하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우크라이나를 향하겠다는 탈북민은 최소 수백 명, 많게는 1,000명이 넘을 거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원하는 탈북민들의 구심점은 북한 정치장교 출신으로 알려진 심주일 목사입니다. 심 목사는 김일성정치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 북한군 평양시 방어사결부 조직부 정치장교로 복무하다 탈북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는 경기 부천시 소재 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심 목사는 2018년 북한에서 군복무를 경험한 탈북민들을 끌어모아 탈북 기독군인회를 창설해 운영하고 있었죠.
심 목사는 2일 본보와 통화에서 "그들(북한군)은 유격전과 게릴라전, 야간전에 능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군이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며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걱정하는 것 같더라"고 말합니다. 이른바 '폭풍군단'이 주축이 될 북한군을 결코 우습게 봐선 안 된다는 얘기죠. 심 목사는 그럼에도 "북한군과 마주 설 경우 그들이 어떤 전법으로 어떻게 싸울지 눈에 딱 보인다"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북한군들을 잘 설득하고, 깨닫게 해 (러시아군에) 동원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걸 잘 알려줘 우크라이나 쪽으로 넘어오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탈북 기독군인회 등 탈북단체가 '탈북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제목의 이번 성명에서 요구한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탈북 군인 출신들이 북한군을 향해 심리전을 전개, 파병된 북한군의 심리 상태에 동요를 불러일으키고 ②탈북 군인들이 희생되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북한으로부터 돌려세워 동족을 구해 대한민국 품으로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내용입니다. 꽤나 구체적인 역할을 언급하며 조직적으로 성명을 낸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정규군 파병에 손사래를 치는 상황에서 정규군이 아닌 북한군 출신 탈북단체가 먼저 나선 이유는 뭘까요? 이번 성명에 ‘탈북 시니어 아미’라는 단체를 대표해 이름을 올린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북한군을 10명 또는 100명만 (포로로) 데려와도 북한군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상대가 포로가 되고 귀순하면 그게 승리하는 전쟁으로, (전장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자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단체가 성명을 내자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도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개 서한을 통해 “우리는 순수하게 북한 3대 세습자의 총알받이로 내몰린 동포를 돕고 싶을 뿐”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리들의 성의를 받아주시기 바란다”고 나섰습니다.
궁금증은 자연히 이들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로 쏠립니다. 정부는 일단 탈북민도 우리 국민이기에, 이들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는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된 곳”이라며 에둘러 ‘파병 불가’ 뜻을 내비칩니다.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는 여행경보 4단계(여행 금지)가 발령됐으며 체류 중인 우리 국민도 철수가 권고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교부의 허가 없이 여행 금지가 발령된 국가에 입국하면 형사처벌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우리 국민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뛰어든 사례가 있어서 이해는 더 쉬울 겁니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가짜사나이’에 출연했던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출신 이근(40) 전 대위 사례를 한번 되짚어볼까요.
그를 둘러싼 논란은 다양하지만, 일단 우크라이나전 참전 논란만 콕 집어 들춰보겠습니다. 재작년 2월부터 여행경보 4단계가 발령돼 여행금지국가가 된 우크라이나에 3월 6일 입국했습니다. 이른바 ‘의용군’ 신분으로 참전한 사실은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고, 외교부에 의해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했죠. 떠들썩했던 그의 우크라이나전 참전은 결국 입국 두 달여 만인 5월 27일 부상 치료 등을 이유로 귀국하며 일단락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여권법 위반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가기 전에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인식을 했지만, 사명감을 갖고 간 것이라 후회는 없다. 대신 법은 지켜야 하고 앞으로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법 위반을 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함께 재판받고 있는 뺑소니 혐의 등에 대해선 부인하면서도, 우크라이나전 참전은 본인이 돌아봐도 빼도 박도 못할 위법 사례라는 얘기입니다.
탈북 단체들도 위법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이근의 사례처럼 신념과 사명감으로 무장해 목숨을 걸고 전쟁통 속 북한군을 구해 대한민국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얘기죠. 다만 커지는 탈북 북한군 목소리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도 많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쉽게 표현해 용병이 되겠다는 뜻인데, 그 경우도 우크라이나에서 요청이 와야 갈 수 있는 것"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도 자국민 보호 원칙은 물론 외교적인 문제까지 고려했을 때 이들의 우크라이나행을 허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민도 탈북 북한군들의 파병 요청을 두고 “대북전단과 차원이 다른 행위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말리고 달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정부도 현재까지는 우크라이나 파병을 고려하진 않는다는 입장인 만큼, 탈북 북한군들의 파병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해보입니다. 변수는 이들이 이 전 대위처럼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전 현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경우입니다. 선교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옵니다. 탈북 북한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게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