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인공지능(AI) 창작물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가운데 한국 만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현세(70)는 세종대·재담미디어와 '이현세 AI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①까치와 엄지, 마동탁 등 그가 오래도록 그려 온 대표 캐릭터별로 외모와 표정 등 기초 자료를 만들면 ②생성형 AI가 이를 학습하고 ③세종대의 만화 전공 학생들이 시나리오를 짜 실제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도다.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오래된 작품을 AI의 도움으로 리메이크하면서 현대적 색채를 입히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젊은 창작자가 AI 웹툰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독자들도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하는 판에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만화가 중 한 사람이 AI를 두 팔 벌려 환영하기로 결심한 것은 눈길을 끈다. 이유는 더 특이하다. 자신의 캐릭터가 영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지금도 자신의 손과 머리가 멀쩡하다며 네이버 웹툰 '명품시대'를 연재하고 있지만 죽음 뒤에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것이다.
3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AI 콘텐츠 페스티벌'에서 대담에 나선 이현세는 "특히 아시아권은 아직 작가가 직접 그리는 것만이 만화라 생각하는, 작가가 죽으면 캐릭터가 같이 죽지 않나"면서 "46년 동안 그린 수많은 만화의 세계관을 AI가 학습해서 나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작품을 그려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AI를 이미 쓰임이 시작된 신기술이라고 표현하면서 "예술가가 끝까지 수작업을 고집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 AI와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AI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박석환 재담미디어 이사는 "이현세 선생님은 만화방에서 잡지로, 신문으로 매체가 바뀔 때마다 늘 첫 타자로 나서 왔다"면서 그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11월 2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AI 콘텐츠 페스티벌은 AI가 디지털 콘텐츠 창작에 관여한 사례를 전시하고 제작 과정을 공개하는 행사다. 미술 작품을 비롯해 음악과 버추얼(가상) 아이돌, 영상, 게임, 웹툰 등에서 AI를 창작과 접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소개됐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AI의 창작이 작가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창작의 방식은 크게 바꾸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AI를 통해 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면 콘텐츠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모두가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