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경찰이 로드리고 두테르테(79) 전 대통령의 민간인 살해 지시 의혹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시장 재임 시절 암살 조직을 운영했다”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따른 조치다. 현지 인권단체는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1일 필리핀스타 등에 따르면 필리핀 경찰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다바오시(市) 시장 재임 당시 테러 그룹, 이른바 ‘죽음의 부대’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연루 여부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8일 ‘마약과의 전쟁’ 관련 상원 청문회에서 “다바오 시장일 때 범죄를 통제하기 위해 7명으로 구성된 암살단(death squad)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다만 세 차례(1988~98년, 2001~2010년, 2013~2016년)의 시장 재직 기간 중 언제 해당 조직을 이끌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자신이 ‘경찰’에 마약 용의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지만, 범죄자들이 공격하도록 도발하라고 재촉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공권력을 악용해 민간인을 상대로 사법 외 살인에 나섰음을 시인한 셈이다.
상원의원들이 ‘자세한 내용을 밝히라’고 압박하자 한발 물러나기는 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암살단은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로 구성돼 있었다”고 불분명하게 답했다. 이후 상·하원은 필리핀 법무부와 경찰에 ‘두테르테의 증언을 토대로 그를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프랜스 카스트로 하원의원은 “두테르테의 자백은 인권과 적법 절차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며 국제형사재판소(ICC)와 협력해 그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원은 다음 달 7일 별도 청문회를 열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하기로 했다. 인권 단체들도 “두테르테 시장 재임 기간 중 다바오시에서 약 1,400건의 의심스러운 살인이 일어났다”며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 ‘마약과의 전쟁’에서도 유사 범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