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처럼 버스전용차로 구간에서는 버스 왼쪽 문으로 타고 내리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기존처럼 오른쪽 문을 이용하면 됩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제주 제주시 서광로의 체험용 섬식정류장. 김태완 제주도교통항공국장은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양문형 버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도는 이날 ‘제주형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고급화사업’의 핵심인 양문형 버스와 섬식정류장 공개행사를 진행했다.
섬식정류장은 도로 양쪽 인도에 설치된 2개 정류장을 통합해 도로 한가운데 섬처럼 1개만 설치한 정류장이다. 승객들은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양문형 버스의 왼쪽 문을 이용해 버스에 오르내리게 된다. 양문형 버스는 섬식정류장이 설치된 중앙버스전용차로 구간에서만 왼쪽 문이 개폐되고, 가로에 설치된 일반 정거장에서는 오른쪽 문이 열린다. 출입문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양문형 버스에는 위성항법시스템이 장착됐다. 섬식정류장에 정차하면 오른쪽 문은 아예 열리지 않는다.
이날 행사에서 양문형 버스는 제주시 광양사거리에 설치된 섬식정류장에서 출발해 용처마을과 삼성초등학교 등을 지나 다시 광양사거리 섬식정류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10여 분간 운행했다. 처음으로 양문형 버스를 타본 주부 부영숙(50· 제주시 삼도일동)씨는 "버스를 환승하려면 도로를 횡단해 조금 걸어가야 하는데, 섬식정류장에서는 버스에서 내린 후 바로 갈아탈 수 있어 편리할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도는 제주시 권역의 시내버스 682대 중 내구연한이 종료되는 버스들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양문형 저상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연내 42대를 시작으로 2026년까지 총 658억 원을 투입해 양문형 저상버스 171대를 도입하고, 서광로 BRT 공사가 완료되는 내년 5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도는 2026년까지 제주도심을 관통하는 10.6km 구간에 양문형 버스와 섬식정류장을 설치할 예정이다.
양문형 버스 도입과 섬식정류장 설치는 제주 도심 전체를 타원형으로 순환하는 BRT를 구축하려는 대중교통체계 개선 계획의 핵심사업이다. 지하철이 없는 제주도는 대중교통의 수송 분담률이 매우 낮다. 설상가상으로 버스의 정시성도 떨어지고 이동속도도 느리다. 제주도 교통의 버스분담률(2021년 기준)은 11.4%로 승용차 분담률(61.2%)의 6분의 1 수준이다. 김 국장은 "제주에 순환형 BRT가 구축되면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도 크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섬식정류장 설치는 예산 절감 효과도 있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도로 양쪽에 2개의 정류장을 설치하는 상대식 정류장으로 운영할 경우 17개의 정류장이 필요하지만 섬식정류장은 6개면 충분하다. 정류장 설치 과정에서 가로수 제거·이식 문제도 해결된다. 섬식정류장 내부에는 냉방기, 공기 청정기, 온열의자, 버스정보안내기, 휴대전화충전장치, 폐쇄회로(CC)TV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다.
양문형 버스와 섬식정류장 설치사업이 순탄하게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2022년 BRT사업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도민들이 인도 축소와 가로수 제거·이식 문제 등을 제기하며 반발하자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도는 해외 사례 등을 1년여간 검토한 끝에 지난해 5월 양문형 버스와 섬식정류장 도입을 결정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시민들의 민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혁신적인 대중교통 모델을 탄생시켰다”며 “양문형 버스와 섬식정류장은 새로운 대중교통 혁신시스템을 제공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라고 말했다. 공개행사에 참석한 강희업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위원장은 “제주가 선보이는 BRT 고급화 사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