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아들처럼 돌본 지적장애인에게 당한 폭행 ...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나요"

입력
2024.11.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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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던 활동지원사 밀친 지적장애 청년
지원사 뇌출혈 등 후유증… 영구 장애 얻어
가해자 1심서 집유, 피해자 아들 납득 못 해
"장애 활동지원 제도의 맹점이 만든 비극"

강모씨(63)는 작년까지 장애인 활동지원사였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대상으로 밥을 먹이고 씻기거나 등·하교나 놀이 등 필요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러나 강씨는 2년간 아들처럼 돌봤던 중증 지적장애인 김모씨(22) 때문에 영구 장애를 입었다. 김씨가 갑자기 밀치는 바람에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김씨는 상해 혐의로 기소돼 얼마 전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지금은 장애인 복지시설에 입소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이 사건의 배경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의 맹점이 있다.

키 180㎝, 3세 지능... 갑자기 나온 폭력성

3일 법원에 따르면,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3단독 문현정 부장판사는 9월 11일 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지난해 6월, 강씨와 김씨가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대구의 대형마트를 찾은 날 발생했다. "구경 그만하고 이제 집에 가자"는 강씨를 김씨가 양손으로 밀친 것이었다. 키 180㎝에 80㎏ 거구가 온 힘을 다해 155㎝에 55㎏ 작은 체구의 강씨를 갑자기 밀어버리니 도리가 없었다.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강씨는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김씨는 도망쳤고, 마트 화장실에 숨어 바들바들 떨다 경찰에 잡혔다. 김씨의 언어발달 능력은 만 2세 8개월, 사회적응 능력은 3세 11개월 수준이다.

강씨는 중환자실에서 사흘 만에 의식을 찾았으나 두개골에 금이 갔고 신경을 다쳐 영구적으로 후각이 소실됐다. 발작성 현기증과 두통, 언어 및 성격 장애 등에도 시달리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강씨는 "그 아이(김씨)도 그러려는 건 아니었을 거야"라며 오히려 김씨를 두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씨는 김씨를 마음으로 낳은 두 번째 자식으로 여겼다. 둘은 2021년 7월 처음 인연을 맺은 뒤 2년간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늘 함께 지냈다. 함께 박물관 구경도 하고, 마트도 갔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 63빌딩을 구경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강씨의 유일한 가족인 아들 A씨(33)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사건 발생 직후 김씨 측에서 "장난으로 밀친 것 같다"고 한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A씨는 1심 결과도 납득하지 못한다. 그런데 김씨 측이 항소해 감정이 더 상했다. A씨는 "민사소송과 함께 2심에선 탄원서를 제출하고 법정에서 직접 엄벌을 요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 가족 생계도 쪼그라들었다. 타지에서 직장에 다니며 원하던 회사의 2차 면접을 준비 중이던 A씨는 어머니가 다쳤다는 소식에 이직을 포기하고 대구로 왔다. 1년 넘게 이어진 간병 때문에 기존 회사도 그만뒀다. 요즘은 A씨가 계약직을 전전하며 모자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원사 대부분 50, 60대 여성

전문가들 사이에선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의 허술함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1년 예산만 2조 원이 넘는다. 정부의 장애인 복지사업 중 가장 많다. 2011년부터 시행돼 지난해에만 12만8,959명의 장애인이 이용했다.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활동지원사 처우는 열악하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활동지원사는 11만2,570명으로 5년 전인 2019년(7만8,044명)에 비해 44.2% 급증했다. 하지만 올해 시급은 1만2,113원. 최중증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에게 지급되는 시간당 추가수당도 3,000원에 불과하다.

자격 취득 요건도 허술하다. 교육 40시간과 현장실습 10시간만 채우면 된다. 이에 활동지원사의 70% 이상이 50, 60대 여성(한국장애인개발원)이다. 김씨 같은 건장한 중증장애인의 경우 물리력을 억제할 수 있는 젊고 노련한 활동지원사가 필요하지만 기피직종이 된 지 오래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를 연결시켜 주는 과정도 정교하지 못하다. 김씨는 존속폭행으로 인한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전력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관련 경력이 전무하고 체구도 작은 강씨에게 매칭됐다.

활동지원사 처우 개선과 함께 대처 교육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력 등에 따른 가산 급여를 개선해 장애인들은 필요한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고 지원사들 역시 일한 만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