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파시즘

입력
2024.10.31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 막판,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경쟁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했다. 해리스는 라디오에 출연해 “트럼프는 자신과 다른 비전을 지녔다”고 말했고, 진행자가 “파시즘에 관한 것이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고 긍정했다. 이후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부르는 논평들이 부쩍 늘어났다.

□하이라이트는 트럼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군 장성 출신 존 켈리가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분명히 파시스트의 정의에 잘 들어맞는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켈리는 파시즘을 극우 독재, 초국가주의, 군사주의, 반대자 강압 등으로 정의한 뒤 “트럼프는 이런 것들이 미국을 더 잘 돌아가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가 “내부의 적을 군을 동원해 진압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가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존경을 표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헤럴드 제임스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우리 시대의 파시즘’이라는 칼럼에서 파시즘이 다수 지지로 집권하고 독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나치당은 대부분 선거에서 30%대 득표에 머물렀고, 혼란을 틈타 집권한 후 좌파 정당 해산과 유대인 탄압 등 강압적 분위기에서 치른 1933년 선거에서도 44%에 그쳤다. 히틀러 역시 대선 득표율이 30%대였다. 제임스 교수는 그를 독재자로 만든 건 대중이 아니라 군대 관료제 경찰 그리고 기업 같은 파워 그룹의 지지라고 말한다.

□제임스 교수는 1930년대 초와 올 11월 미국 대선 정국 유사점 중 하나가 기업가들이 파시즘의 대두에 대해 분열하고 방관하는 것이라고 했다. 1930년대 유대인 출신으로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 총재였던 게오르그 졸름센은 망명 후에야 나치의 실체를 알게 됐다며, “왜 워런 버핏 같은 거물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답답해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마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따라나서는 우리 기업인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