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 대선 닷새 앞두고 워싱턴 겨냥 ICBM 도발...尹 "국제사회와 강력히 대응할 것"

입력
2024.10.31 18:30
김정은 "핵무력 강화노선 절대로 안 바꿔" 선언
러시아 파병 둘러싼 북한 안팎 관심 분산 의도
정부 긴급 NSC 개최...신규 대북 독자 제재 지정

북한이 미국 대선을 닷새 앞둔 31일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적에게 대응의지를 알리기 위한 적절한 군사활동"이라며 말폭탄을 얹었다. 미국에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쏠린 국제사회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력한 대응을 경고한 뒤 "북한이 어떠한 기습 도발도 획책할 수 없도록 빈틈없이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이날 "오늘 오전 7시 10분쯤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화성-18형' 이후 10개월 만에 발사한 ICBM으로 합참은 신형 고체추진 ICBM으로 추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미사일이 약 86분간 비행해 오전 8시 37분 일본 홋카이도 서쪽 해역에 낙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12일 '화성-18형'의 74분보다 비행시간은 약 12분 더 길었으며, 최고 고도도 7,000㎞를 처음으로 넘겼다. ICBM 최장 비행기록과 최고 고도를 동시에 경신한 것이다. 고각 발사로, 정상각(30~45도)으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는 1만5,000㎞ 이상으로 추정된다. 평양에서 워싱턴까지의 거리 1만1,000㎞를 훌쩍 뛰어넘는 거리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ICBM 발사 소식을 신속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발사 5시간 만에 "국가수반의 명령에 따라 매우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며 "전략 미사일 능력의 최신 기록을 갱신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발사 현장을 찾아 "적에게 우리의 대응의지를 알리기 위한 적절한 군사활동"이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 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밝혔다.

이번 ICBM 도발은 워싱턴에서 열린 30일(현지시간) 한미 국방장관의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반발한 측면이 크다. 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북러 군사협력과 북한군 파병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내달 5일 미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ICBM 발사로 핵 미사일 전력을 과시하고 새로운 행정부와의 핵담판에서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전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군 러시아 파병 관련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자 관심을 ICBM 이슈로 돌리겠다는 노림수도 읽힌다. 또 북한 내부에도 파병 소식이 퍼져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내부 결속을 위해 도발을 감행했을 수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위협에 대응한 정당한 행보라는 프레임 전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국가안보실은 신원식 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으며,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도발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고체 추진 미사일 분야 북한 맞춤형 감시대상 품목'을 신규로 발표했다. 제재 대상은 고체추진제, 동체, 연소관, 구동장치 등 북한이 자체 생산하기 어려운 고체 추진 미사일 개발·생산 관련 15개 품목이다. 군의 대북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합참은 성명을 내고 "김정은 정권의 불법적이고 무모한 도발을 규탄하며,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도 즉각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숀 세이빗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30일 밤 성명으로 "여러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번 발사는 국제사회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혜미 기자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