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임기 반환점을 도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다. 앞선 절반의 임기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 리스크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취임 직후 지지율 50% 선이 무너졌을 때도, 최근 정치 브로커 명태균 녹취록 파문으로 국정운영 동력의 마지노선인 지지율 20%대가 무너진 이유도 모두 중심에는 김 여사가 있었다.
이에 정치 원로와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의 결자해지”를 촉구했다. 특히 명씨 사태 등 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국민 앞에서 ‘걱정스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김 여사를)뒤로 물러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이른바 '읍참마속'의 자세를 가지고 결단해야 한다”(유흥수 국민의힘 상임고문)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시작은 달랐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지지율은 52%(한국갤럽)에 달했다. 진보정권의 문재인(81%) 노무현(60%) 전 대통령보다는 낮았지만, 보수정권의 이명박(52%) 박근혜(42%)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무난한 수치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지지율 50%가 무너졌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는데도 지지율이 49%(22년 6월 3주)로 떨어졌다. 김 여사가 과거 본인의 회사 직원과 함께 공적 행사(경남 김해 봉하마을 방문)에 참석했다가 ‘비선 논란’이 제기된 시점이었다. ‘김 여사 행보’(1%)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정적인 이유로 처음 등장했다.
곧이어 지지율 40%가 붕괴됐다. 같은 해 6월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스페인 순방에서 김 여사가 이원모 당시 인사비서관의 부인을 민간인 신분임에도 전용기에 태워 함께 갔다는 보도가 터져 나올 때다. 지지율이 한 주 전보다 6%포인트 떨어져 37%(7월 1주)에 그쳤다. 지난해 7월에는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 기간 중 쇼핑 논란,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이 불거져 지지율은 전주 대비 6%포인트 하락한 32%(23년 7월 2주)로 나타났다.
매번 대응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면서 화를 키웠다. 대통령실은 "잘 아는 분이라 동행한 것",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등 성의 없는 짧은 해명으로 일관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여권 내부에서도 대통령실을 향한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사태를 방관한 결과 지난해 11월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의 영상 공개로 촉발된 ‘명품백 수수’ 논란 당시 36%(11월 2주)이던 지지율은 2024년 2월 1주 조사에서 29%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개 브로커에 불과한 명씨가 최근 들어 김 여사와의 관계를 폭로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취임 전날 명씨에게 직접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지시한 듯한 정황이 담긴 육성이 공개됐다. 대통령실은 국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의혹 해소에 집중하기 보단 '가짜 뉴스' 대응에 집중하는 실책을 반복하고 있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국민적 신뢰는 지지율은 19%(10월 5주)로 급락해 임기 중 최저치를 갈아 치웠다. 여론은 국정운영 부정평가의 최대 원인으로 '김 여사 문제'(17%)를 지목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연금, 의료, 교육, 노동 4대 개혁 추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아 성과를 주문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국정 동력, 개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윤 대통령 스스로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3일 통화에서 “김 여사 문제 등이 계속 누적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신뢰의 위기'로 번졌다”며 “한 번 신뢰의 위기가 오면 웬만한 조치로 회복 안 되는데, 이 같은 '정무적 차원의 신뢰 위기'가 의료대란 등으로 인한 '정책적 차원의 신뢰 위기'와 중첩되며 복합 위기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교육개혁, 의료개혁, 노동개혁 다 좋은데 그걸 제대로 하려면 절차나 진정성이나 신뢰가 있어야 한다”면서 “집권 후반기 윤석열 정부가 정상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가능해 보이지가 않는다”고 진단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우린 (법적) 문제가 없다는 식의 불통의 이미지, 다시 말해 '법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을 계속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원로들은 김 여사의 사과 및 활동 자제, 불통을 깨기 위한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정대철 회장은 “부정부패를 하지 않고도 정치가 망하는 수가 생길까 봐 걱정”이라며 “김 여사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는 경륜 있는 사람들의 말과 조언을 듣고 있다는 얘기가 전혀 없는 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야당을 적대시하는 태도와 관련해서도 “(불통의) 결과와 책임은 궁극적으로 전부 대통령이 지게 돼 있다”면서 “(야당의) 입법 폭주에 거부권 행사로 대응하는 건 정치의 소멸이다. 야당과의 연립정권적 성격을 띠는 정치를 하지 않으면 현 상황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흥수 상임고문은 “사과만 가지고도 힘든 상황”이라며 “김 여사와 관련해 국민들과 약속한 것들을 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한동훈 대표가 거듭 주장하는 특별감찰관과 관련 “그게 국회에서 임명을 안 해서 못 하는 것이냐”면서 결국 윤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