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살해 후 증발… 50년간 수사기관 따돌린 미국 엘리트 외교관

입력
2024.11.15 04:30
15면
<90> 1976년 미국 비숍 일가족 살해 사건
해외 누비며 5개 국어 구사한 엘리트 외교관
모친·아내·세 아들 둔기로 살해한 뒤 불태워
사건 직후 종적 감춰… 범행 동기도 오리무중
50년간 FBI 따돌려… 세계 곳곳서 목격담만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사건은 1976년 3월 1일 미국 메릴랜드주(州) 베세즈다의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 벌어졌다. 승진 인사에서 물을 먹고 우울해하던 브래드퍼드 비숍(당시 39세)은 그날 감기를 이유로 조기 퇴근했다. 하지만 집으로 곧장 향하지 않았고, 대신 은행으로 가서 돈을 뽑았다. 그 돈으로 마트에서 망치와 기름통을 샀다. 다음에는 주유소에 들러 기름통에 휘발유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날 오후 7시 30분 귀가한 비숍은 거실에서 책을 읽던 아내 애넷 비숍(당시 37세)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그때 개를 산책시키러 나갔던 모친 로벨리아 비숍(당시 68세)이 돌아왔다. 비숍은 또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이후에는 2층 침실로 올라가 곤히 잠자고 있던 세 아들, 윌리엄(당시 14세)·브렌튼(10세)·제프리(5세)까지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비숍은 시신들을 차에 싣고 노스캐롤라이나주까지 밤새 달렸다. 그레이트스모키산맥 국립공원에서 멈춘 그는 숲속 캠핑장에 욕조 크기의 무덤을 판 뒤 일가족 시신을 던져 놓았다. 이후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사라졌다. '일가족 살해'라는 엽기적·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50년 가까이 수사기관을 따돌린 엘리트 외교관의 이야기다.

늦어진 초동수사…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암매장 현장을 산림 관리원이 발견한 건 그로부터 2주가 지나서였다. 버려진 차 옆에는 불에 탄 시신이 놓여 있었다. 차량 안에는 시신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피 묻은 담요와 둔기, 산탄총이 있었다.

대규모 수색이 시작됐다. 미 국립공원관리청과 연방수사국(FBI), 주 경찰이 총동원됐다. 하지만 도무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공원 방문객 수천 명이 일일이 조사를 받았으나 목격자는 없었다. 전소된 탓에 시신 신원 확인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그때쯤 메릴랜드에서 비숍 일가가 행방불명이라는 사건이 접수되고 나서야 FBI는 두 사건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가장에 의한 일가족 살해' 사건 수사가 개시됐다.

비숍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것은 범행 이튿날인 3월 2일. 목격자에 의하면, 비숍은 신원 미상 또래 여성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주 잭슨빌에서 15달러 상당의 스포츠 용품을 신용카드로 구매했다. 시신 매장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160㎞ 떨어진 상점에서였다. 비숍이 일가족을 살해한 뒤 불륜 관계였던 여성과 함께 잠적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물론 확인된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흔적은 '완전 증발' 상태였다.


"전형적 미국인 가정"… 부러움 사던 엘리트 외교관의 몰락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주변인들 취재 후 비숍의 일생을 이렇게 기록했다. "비숍과 아내는 고교 시절부터 '전형적인 미국인 커플'이었다. 비숍은 풋볼팀의 잘생긴 금발 쿼터백이었고, 아내는 치어리더였다. 졸업 후 비숍은 예일대, 아내는 버클리대에 각각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실제 비숍은 엘리트 코스를 거친 외교관이었다. 대학원을 마친 뒤 국무부에 들어가 에티오피아, 보츠와나,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근무했다. 모국어를 포함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세르보크로아티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는데, 이를 밑바탕 삼아 정보 활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초고속 승진이 뒤따랐다. 언어뿐만 아니라 비숍은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을 뽐냈다. 등산, 카누, 수영, 스키 등 야외 활동을 즐겼고, 아프리카 보츠와나 근무 시절엔 비행 면허도 땄다.

비숍의 미국 복귀 시점은 범행 2년 전인 1974년이었다. 이때부터 비숍은 모친을 모시고 살았다. 세 아들까지 총 6명인 그의 대가족을 친구나 동료들은 "화목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올아메리칸 가족(All-American family)"이라고 회상했다. 비숍의 가족은 중산층 커뮤니티에도 쉽게 적응했다.

하지만 미국 정착 시점부터 비숍은 '정서적 불안정' 상태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시절 내내 해외 근무를 했던 탓인지 국무부 청사 책상에만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마침 승진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원하는 보직도 받지 못했다.

국무부 동료들에게 종종 삶에 대한 울분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우울증 치료제까지 복용했다. "스카치와 와인 등 술에 빠져 살았다"는 내용이 비숍의 의료 기록에 남아 있다. 동료들은 이때의 비숍이 "자기중심적이었고, 폭력적 성향과 결벽증 같은 모습을 동시에 드러냈다"고 전했다.

가족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법하다. 엄격한 모친이 자녀 문제를 통제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고, 가정주부로 살길 바랐던 아내가 다시 대학에 들어가 미술 공부를 새로 시작한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비숍이 범행에 이르게 된 과정 및 동기와 관련, 각종 진술을 토대로 수사 당국이 내린 결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평생 얽매이지 않고 떠돌며 살던 마초적 남성이 중년 초입 승진에서 밀리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던 시기에 가족과의 불화로 극단적 살해를 저질렀다."

세계 곳곳서 목격담… FBI는 계속 한 발씩 느려

비숍의 최후는 미스터리다. 수사기관이 세운 첫 번째 가설은 자살설이었다. 가족을 살해한 뒤 어딘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라는 추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직접 증거는 없다. 무엇보다 그의 시신은 미국 대륙 전역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해외 도주설이다. 5개 국어에 능통한 데다 풍부한 외국 생활 경험, 아마추어 조종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이었다. FBI는 비숍이 오래 근무했던 이탈리아 등 해외 지역에서의 그의 행적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사건 3년 뒤인 1979년,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 소렌토에서 비숍과 닮은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자는 국무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로이 해럴이었다. 해럴은 소렌토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우연찮게 비숍과 마주쳤다고 진술했다. 해럴이 이름을 부르자 비숍은 "맙소사"라고 외친 뒤 도망쳤다는 것이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수염도 정리하지 않아 지저분한 상태였다고 한다. FBI는 이탈리아 경찰과 협력해 소재를 추적했으나 실패했다.

그다음은 영국, 핀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그리스, 스페인, 스웨덴이었다. 지구 곳곳에서 '비숍을 봤다'는 목격담 수백 건이 쏟아졌다. 프랑스 또는 홍콩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모두 헛소문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를 떠돌며 FBI의 추적을 따돌리는 비숍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사건에 대한 소설은 물론, 미국·영국·독일 등에선 미스터리 TV 프로그램마저 등장했다.

'계획 살해' 정황만… 세월 속에 갇힌 진실

새 단서는 약 20년 뒤인 1993년 3월 나왔다.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이 우연히 입수한 편지 한 통이었다. 살인 사건 발생 1년 전, 은행강도 혐의로 수감 중이던 켄 뱅크스턴이 비숍에게 보낸 편지였다. 자신이 청부살인업자를 연결해 줄 테니, '국무부 간부의 지위를 이용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여권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는 수사 초기 FBI가 비숍의 국무부 사무실 캐비닛에서 발견해 압수했음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초동수사의 부실 정황이었다.

가족 살해의 구체적 내용은 담기지 않았지만, 편지 내용상 '비숍이 전문 살인범을 고용하려 했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최소 1년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고 본 FBI는 편지 발신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뱅크스턴은 이미 7년 전 형기를 마친 뒤 미시시피 지역에서 암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FBI가 비숍을 '10대 수배자' 목록에 올리고 정보 제공자에 대한 '10만 달러 포상금'을 내걸자, 또다시 온갖 제보가 쏟아졌다.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자동차에 치여 사망한 남성의 시신이 비숍과 닮았다"는 식의 신고들이었다. 혹시 몰라 DNA 검사를 해 봤지만 결과는 '불일치'였다.

2014년 FBI는 법의학자에게 의뢰해 '생존 시 70대 노인인 비숍'의 가상 얼굴을 만들어 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비숍이 해외가 아닌 미국 어딘가에서 신분 세탁 후 평범한 노년 생활을 누리고 있을 수 있다는 추측 때문이었다. 흰 수염, 이마가 벗겨진 머리, 안경 착용 등 여러 버전으로 비숍의 가상 얼굴이 제작돼 공개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숍은 이미 망인이 됐으리라는 추정이 힘을 얻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아흔 살을 바라보고 있을 노인을, FBI는 지금도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무장했거나 극도로 위험하며, 자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함."

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