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가계대출 급증세가 눈에 띄게 진정됐지만, 은행권은 총량 관리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신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조기 상환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대출 한파’는 연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30일 우리은행은 다음 달 1일부터 30일까지 가계대출 중도상환해약금을 전액 면제한다고 밝혔다. 중도상환해약금은 만기일 이전에 대출을 상환하는 고객이 내는 수수료다. 대출 유형에 따라 0.6~1.4% 요율로 부과하는데, 한시적으로 받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 측은 “어려운 경제 환경 속 대출 고객의 금융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상황에 따라 기간 연장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상생’을 앞세웠지만, 회수 시기를 앞당겨 가계대출 잔액을 줄이려는 의도가 함께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신한은행도 지난달 말까지 실행된 가계대출에 한해 중도상환해약금을 11월 한 달간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한도를 줄이는 조치와 달리 중도상환해약금 면제는 대출자 부담이 줄면서 은행 가계대출 규모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라 소비자 반발을 살 여지도 작다.
은행권 가계대출 급등세는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각 은행 취합 결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2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32조3,946억 원으로 지난달 말 대비 1조4,275억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증가액이 역대 최대였던 8월(9조6,259억 원)은 물론 9월(5조6,029억 원)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여전히 플러스(+)인 만큼 금융당국에 제출한 연간 대출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은 연말까지 총량을 맞추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신용대출 9종의 최대 대출 한도도 연 소득 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단, 결혼 예정자나 장례, 출산 등 예외 사례는 영업점에 증빙 자료를 내고 기존과 동일한 한도를 적용받을 수 있다. 신용대출 12종에 대한 비대면 채널 판매는 이날부터 연말까지 중단된다. ‘대출모집인’ 채널도 대부분 은행에서 막힌 상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등은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택 관련 신규 대출 취급을 잠정 중단했다. 하나은행은 대출모집법인별 신규 취급 한도를 부여해 규모 관리에 나섰다.
이례적으로 KB국민은행은 대출 제한을 일부 푸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갭 투자’ 등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해 소유권이 바뀌는 주택에 대한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이달 말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는데, 기간 연장 없이 다음 달 재개를 검토 중이다. KB국민은행은 가계대출 총량이 줄어 자체적으로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