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간첩법 강화 이후 한국인 첫 구속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①구속된 한국인의 간첩 행위 동기가 크지 않다는 지적 ②한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를 겨냥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 아니냐는 의혹 ③한국 정부가 그간 이 사안을 쉬쉬해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 등이다.
30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살던 50대 교민 A씨는 지난해 12월 중국 공안당국에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올해 5월 현지 검찰에 넘겨져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29일 "한국인이 간첩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근무했던 A씨가 기밀을 절취했다는 혐의를 적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A씨가 중국의 영업 기밀을 유출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A씨가 근무했던 CXMT는 중국 D램 반도체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기는 하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기술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A씨가 CXMT 내부 기술 정보를 빼돌려야 할 동기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A씨 측 역시 중국에서 반도체 핵심 기술에 접근할 권한 자체가 없다고 항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핵심 기술이 아니더라도 업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제3자에게 전달한 것을 빌미로 중국이 반간첩법을 적용했을 수는 있다"고 짚었다.
중국의 '외교적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해석도 나왔다. 외신들은 한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를 겨냥해 중국이 '이에는 이' 식 맞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에 힘을 실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A씨 구속 사건이 전 삼성전자 임원의 기술 유출 사건이 불거진 가운데 나왔다"는 데 주목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5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임원을 지낸 한국인 반도체 전문가를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 한 혐의'로 체포했다. 이어 한국 수사 당국은 반도체기업 전직 임직원 30여 명을 최근 추가 입건하는 등 '반도체 기술 중국 유출' 차단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FT는 "한국 경찰이 올해 적발한 12건의 첨단 기술 유출 사건 중 10건이 중국 관련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근무 경험이 있는 전직 고위 외교관은 "중국은 한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적극 동참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한국인 구속은 이에 대한 맞대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 정책 맞대응으로 중국 내 미국 기업 통제를 강화한 것처럼 A씨 구속도 한국 정부의 기술 통제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는 뜻이다. 나아가 한국과의 대화에서 협상 지렛대를 높이기 위한 사실상의 '인질 외교'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주중국 한국대사관은 A씨 구속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중국의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우리 국민은 없다"고 밝혀 왔다. A씨 구속 경위와 재판 절차에 대해서도 대사관 측은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로키(low-key)' 대응 기조를 유지 중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주목도 상승이 차후 A씨 재판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한국은 내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 중이다. 반간첩법을 둘러싼 논란이 최근 한중관계 개선 흐름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