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공화당 경쟁 상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유권자의 의구심과 분노를 자극하고 나섰다.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트럼프는 선거전 막판 유세 찬조 연사의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비하 발언에 자칫 발목을 잡힐 수도 있게 됐다.
해리스는 29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 엘립스 공원에서 인근 백악관을 배경으로 유세 연설을 했다. ‘최후 변론’(closing argument)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날 연설은 상당 부분 트럼프의 재집권이 초래할 위험을 부각하는 데 할애됐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는 “우리 모두 도널드 트럼프가 누구인지 안다. 근 4년 전 여기서 선거로 드러난 국민의 뜻을 뒤집으려 무장한 군중을 국회의사당으로 보낸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공격으로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140명의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비판은 이어졌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시민을 ‘내부의 적’이라 부르며 그들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여러분 삶을 나아지게 만들지 고민하는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불안정하고 복수에 집착하며 불만에 사로잡혀 있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이날 해리스가 연설 장소로 고른 엘립스 공원은 2021년 1월 6일 트럼프가 대선 결과 불복 연설로 극성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을 부추긴 곳이다. 최근 트럼프를 향한 해리스 측 공세의 초점은 그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자가 될 가능성에 맞춰져 왔다. 이런 메시지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경합주(州) 대신 상징적 공간을 해리스가 택했을 공산이 크다.
마침 편승할 만한 기회도 마련됐다. 푸에르토리코를 “쓰레기 섬”에 빗댄 27일 트럼프 뉴욕 유세 당시 코미디언 찬조 연사의 인종차별성 조롱 발언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유권자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해리스 캠프는 발 빠르게 해당 사실을 알리는 광고를 만들었다. 트럼프가 29일 유세차 방문한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주의 푸에르토리코 출신이 47만 명(주 전체 라틴계 유권자 60만 명의 약 80%)이나 되고, 유세 장소인 앨런타운 주민의 4분의 1이 이 섬 출신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현지발 기사에서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가 겨우 얻은 라틴계 남성 유권자의 지지가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측은 곤혹스러운 기색이다. 캠프가 성명으로 트럼프와 무관하다는 해명을 내놨고, 트럼프도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발언자가 누구인지 모른다며 선을 그었다. 앨런타운 유세 전 드렉셀 힐에서 가진 은퇴자들과의 라운드테이블(원탁 회의)에서는 “나보다 푸에르토리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며 무마를 시도했다. 하지만 유감 표명은 없었고, 이날 오전 플로리다주 팜비치 기자회견 때는 비난에 아랑곳없이 뉴욕 유세를 “사랑의 축제”로 규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