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분노 잊지 말자"… 독재자 축출 방글라데시, 호화 총리 관저 혁명 기념관으로

입력
2024.10.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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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독재 하시나 총리 8월 시위로 쫓겨나
과도 정부 "파시스트 정권 불의 기억할 것"

지난 8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출범한 방글라데시 과도 정부가 축출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호화 관저를 혁명 기념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혁명 중심에 있던 장소를 보존해 당시 시민들의 분노를 기억하고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는 취지다.

29일 다카트리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시프 마흐무드 부이얀 방글라데시 과도 정부 고문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하시나 전 총리가 머물던 수도 다카 총리 공관을 대규모 봉기를 기념하는 건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념관을 통해 이전 파시스트 정권에서 일어났던 모든 불의와 국민적 분노의 기억을 보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리 관저는 하시나 독재 정권의 상징이다. 하시나 전 총리는 1996년 방글라데시 첫 여성 총리가 되고 2009년 재집권에 성공하며 총 21년간 집권했다. 내각책임제인 방글라데시에서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이고 실권은 총리가 갖는다.

그는 지난 7월 ‘독립유공자 후손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700여 명 이상 숨지며 전국적 저항에 부딪히자 8월 5일 총리직에서 사퇴하고 인도로 도피했다. 이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빈곤퇴치 사회운동가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가 과도 정부 수장으로 임명됐다.

대규모 봉기 당시 시위대 수천 명은 지난 8월 총리 관저를 ‘억압의 상징’이라 부르며 가장 먼저 습격했다. 이들은 내부에서 하시나 전 총리가 수집한 명품 가방과 의류, 전자기기, 고급 가구 등을 빼냈고, 벽 곳곳에 정부를 비난하는 낙서를 적기도 했다. 과도 정부는 해당 낙서도 ‘중요한 기록’으로 보존한다는 방침이다.


또 혁명 기념관 내에 전 정부 비밀 감옥 모형도 전시하기로 했다. 하시나 행정부는 정부 비판 인사 등 정치범들을 재판 없이 군사정보국 산하 비밀 감옥 ‘아이나가르(거울의 집)’에 가두고 신체·정신적 고문을 일삼았다.

앞서 스웨덴에 기반을 둔 공익 저널리즘 플랫폼 네트라 뉴스는 아이나가르를 ‘외부 빛이 들어오지 않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환풍기 소음만 들리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거울의 집’이라는 이름 역시 수감자들이 거울에 비치는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사람을 볼 수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악명 높은 장소를 재현함으로써 인권 침해와 사법 외 살인 등 독재 정권의 만행을 알린다는 의도다. 유누스 박사는 “아이나가르가 (기념관) 방문자들에게 수감자들이 견뎌야 했던 고문을 상기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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