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해도, 보고 느끼고 말할 수 있답니다!"
무대에서 밝은 미소와 함께 군무를 소화하는 모습은 춤부터 노래, 수어까지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연습량이 밑바탕이다. 주인공은 찬연(26), 현진(25), 지석(21) 세 명으로 이뤄진 세계 최초 청각 장애 아이돌 '빅오션'.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빅오션 멤버들은 "경험을 통해 용기를 배우고, 용기로 인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며 "부딪히고 도전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돌 특유의 박자에 딱딱 맞는 '칼군무'는 어떻게 소화할까. 멤버마다 청력 손실 정도가 달라 박자를 인지하는 순서는 제각각이다 보니, 1년 반 전 연습 초기에는 같은 춤이라도 조금씩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춤이 따로 놀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란 말처럼 청각 대신 촉각과 시각을 활용했다. 박자에 따라 진동이 나는 스마트 시계를 손목에 착용하고, 소리 대신 진동을 느끼면서 합을 맞췄다. 박자에 맞춰 모니터로 빛을 비추는 메트로놈도 활용해 눈으로도 박자를 익혔다. 찬연은 "우리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해 연습하는 건 춤"이라며 "서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이 달라 조율하고 맞추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고 설명했다.
노래는 수어로 대신한다. 멤버 모두 소리가 부분적으로 들리지만,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수어로 퍼포먼스를 한다. 노래는 사전에 녹음해 두고 무대에서는 립싱크로 한다. 원래 수어를 아예 못했다는 찬연은 "무대에서 팬분들이 멀리 있거나 주변이 시끄러우면 말이 잘 들리지 않지만, 수어로는 소통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물론 수어뿐 아니라 틈틈이 노래도 연습한다. 목소리를 내면 음정을 인식해 화면에 표시하는 '튜너' 모바일 앱을 통해 음정을 확인하고 노래를 녹음한다.
언제나 떨리는 무대이지만 팬들과 스태프, 무엇보다 멤버들이 있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수 있다. 찬연은 "노래가 시작되면 팬분들이 몸짓으로 신호를 주고, 갑작스럽게 음향 사고가 나도 스태프분들이 무대 근처에서 손을 흔들어주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석은 "무대에는 항상 변수가 발생하지만 멤버들을 믿으면서 감각적으로 맞춰 나간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정식 데뷔한 이들은 데뷔 전 각자 다양한 길을 걸어왔다. 아홉 살에 왼쪽 귀의 청력을 잃고 '인공 와우(달팽이관)' 보조기를 낀 뒤 모든 소리가 기계음처럼 낯설게 들렸던 현진(25)은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소리를 아름답게 듣기 시작했고,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청각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를 깨는 주제로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현진은 "처음에는 장애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가수 도전 계기를 말했다. 찬연과 지석은 각각 청능사(청력 검사와 재활 전문가)와 알파인스키 선수가 직업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청각 장애 아이돌 프로젝트를 접하고 오디션을 봐 합격했다. 지석도 "선수 생활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청각 장애 아이돌 오디션이 열린다고 해서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빅오션'으로 뭉친 지 약 6개월, 팬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으면서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졌다. 데뷔 후 "너희 같은 아이돌이 이제라도 세상에 나와줘서 고마워"라는 댓글이 가장 감동적이었다는 현진은 "팬들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찬연은 "해외 활동 기회도 많아져 더 많은 팬을 만나고 저희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선한 영향력을 더 많이 퍼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에 있어서 어려운 일은 많지만, 불가능은 없어요. 저희를 보면서 마음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과 밝은 에너지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