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제사 주재자)의 동의 없이 조상의 유골을 꺼내 화장했을 경우 유골을 함부로 훼손한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분묘발굴유골손괴, 분묘발굴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게 유골손괴죄를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깨고 8일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파기 부분과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부분은 경합범(같은 행위로 여러 범죄를 저지르는 것) 관계에 있어 전부 파기돼야 한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인 A씨는 시댁 선산을 자신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선산엔 A씨의 시부모와 시조부모 등의 묘가 있었고, 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벌초 등 관리를 주로 해왔다. 제사는 집안 장남이자 A씨의 시아주버니인 B씨가 도맡았다.
남편이 사망한 뒤인 2020년 4월 A씨는 아들과 상의해 선산 땅을 타인에게 팔면서 조부모 등의 유해를 납골당에 모시기로 했다. B씨 등의 동의는 받지 않은 채, 그해 7월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이용해 분묘를 파내고 장례업체 직원들로 하여금 수습된 유골을 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안치하도록 지시했다.
쟁점은 이들 모자가 조상들의 유골을 무단으로 꺼낸 것을 넘어 유해를 손괴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1심은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두 사람에게 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 모자가 유골을 봉안한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방식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유골발굴 혐의만 유죄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망인들에 대한 사회적 풍속으로서 종교적 감정이 훼손되는 방식으로 유골이 수습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유골에 관한 관리·처분은 제사 주재자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B씨 허락 없이 이뤄진 화장은 그 방식과 무관하게 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망인들이 사망할 당시 제사 주재자는 장남이 맡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만, 현재는 상속인 간 협의가 없으면 남녀 성별 상관없이 무조건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법원은 "사자들에 대한 제사 주재자의 동의 없이 피고인들이 이 사건 유골을 화장장에서 분쇄해 훼손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적법한 장사의 방법인 화장 절차에 따라 유골이 안치됐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유골에 대한 손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원심 판단엔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