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10·27 총선(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자민당 1강 체제'가 1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정권 유지를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의 참패에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의 입지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 자민당 정권을 유지하려면 최대 한 달 안에 '새 연립정권'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이 정권 교체 완수를 벼르고 있어 일본 정치권이 연립정권 출범을 위한 치열한 수싸움에 돌입했다.
2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날 실시된 총선에서 기존 의석수(247석)보다 56석 감소한 19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2012년 총선 이후 이어온 단독 과반(중의원 465석 중 233석) 달성에 실패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기존 32석에서 24석으로 의석수가 줄었다. 자민·공명당 합계 의석수는 215석으로, 연립여당으로도 과반이 안 됐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48석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기존 98석에서 50석이나 늘어난 결과다. 제1야당이 140석 이상 차지한 것은 2003년 총선 이후 21년 만이다. 일본유신회(38석)와 국민민주당(28석)은 공명당을 제치고 원내 3·4당이 됐다. 야당 합계 의석수는 250석으로, 여당을 크게 따돌렸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국회의 '자민당 1강'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당의 참패 요인은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이 꼽힌다. 지난해 12월 자민당 일부 계파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거둔 지원금을 비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민당은 십자포화를 맞았다.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시바 총리가 이를 수습하려 지난 1일 총리에 취임한 지 8일 만에 조기 총선을 감행했다. 그러나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 공천 입장을 번복하고, 공천을 배제한 후보 지부(한국 지구당에 해당)에 2,000만 엔(약 1억8,000만 원) 규모의 선거 지원금을 내려보내면서 화를 키웠다.
일본 국민의 정치 불신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는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했고, 자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의 가장 큰 패인은 유권자의 비자금 스캔들에 대한 분노가 큰 상황에서 공천 배제 후보 지부에 지원금을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총선 참패에도 총리 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날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패배 원인을 분석해 고칠 점은 서둘러 고치겠다"며 "엄중한 안보 환경과 경제 환경 속에서 국정이 한시라도 정체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자민당 참패로 연정 구성을 위한 셈법은 복잡해졌다. 단독 과반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이 없고, 현 상황에서 기존 '자민·공명당 연립정권 체제'를 이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총리 지명을 확보하겠다"며 정권 교체 목표를 재확인했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이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을 끌어들여 집권하기 위한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헌법에는 '총선 이후 30일 안에 총리 지명을 위한 특별국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관례상 총선 이후 10일 안에 특별국회를 열어 총리를 지명하는데, 여야 간 힘겨루기가 길어질 경우 총리 지명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총리 지명 기한은 다음 달 26일이지만 관례상 11월 7일 국회 소집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면서도 "(정당 간 연립을 통한) 과반 의석 확보가 확정되지 않으면 국회 개회가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자민당 내부에선 '이시바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어 이시바 총리 주도 연정 구성은 난항이 예상된다. 요미우리는 "이시바 총리가 당내 '이시바 끌어내리기'를 버티지 못하면 단명 총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