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지났지만 이태원 참사의 상흔은 깊다. 159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스스로 책임을 진 고위공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경찰의 불송치와 검찰의 불기소 처분, 법원의 무죄 선고 등 법적 잘잘못을 따지는 지지부진한 과정 속에서 '면죄부'를 받은 이들은 아직도 공직을 수행하고 있거나 명예롭게 퇴직했다.
이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의 시간이다. 특별법 통과 4개월여 만인 지난달 본격 활동에 들어간 특조위는 흩어진 진실의 조각을 모아 그날의 진상을 파헤치고 유족들의 한을 풀어야 한다. "그날 이태원에 간 그들의 잘못"이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일부의 잘못된 인식도 바꿔야 한다. 안전에 대한 국가적 책임의 개념을 다시 세우고,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정쟁으로 출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데다 주어진 시간은 1년뿐이라 한계가 뚜렷하다는 우려도 높다. 그러나 참사 2주년을 앞둔 지난 25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난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가 믿는 건 바로 "진실의 힘과 양심"이다.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송 위원장은 헌법학자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인권 전문가다.
-참사 2주년이다. 큰 책무를 맡은 만큼 위원장으로서의 마음도 무거울 거 같다.
"특조위는 유족들의 아픔에, 사회와 국가가 응답하면서 탄생한 조직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통해 내년에는 삼년상을 제대로 치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다. 현재 본격 조사에 앞서 위원회 구성에 힘을 쓰고 있다. 별정직 60명에 파견 30명 등 약 100여 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방재·안전, 사실관계 조사에 특화된 수사관 등 각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할 것이다."
-특조위 진상규명은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나. 유족들은 책임자 처벌을 강력하게 원하지만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단순한 위로, 거짓으로 달래는 것만으로는 치유가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진상규명은 모든 문제의 선결 지점이다. 잘못을 했으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는 지적과 우려는 이미 충분히 들었다.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참사를 대하는 마음은 같다. 충실하게 자료를 확보해서 여러 한계들을 돌파해 감춰진 부분들을 드러내겠다."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 유족들과 사회의 분노를 더 키웠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불송치), 윤희근 전 경찰청장(내사 종결) 등은 현재도 정상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거나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직했다.
"법치주의의 한계다. 폭력적인 사회에선 법이 폭력이라는 본질을 가린다. 법만 어기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은 '인간됨'을 말살한다. 잔잔한 폭력이 만연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특히 사회지도층, 공직자의 '법을 위반하지만 않으면 잘못한 게 없다'는 인식은 굉장히 위험하다. 우리에겐 법적인 의무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 지켜야 할 예의와 도리가 있다. 그런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말 한마디로 비수를 꽂는 행태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나. 도덕적 가치 회복이 절실하다."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재난안전시스템의 개선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특조위 일이다.
"전문가들의 식견과 외국 사례 등을 기초로 여러 대책들을 강구할 예정이다. 다만 안전을 강조할수록 삶에 개입하려는 공권력이 커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위험성이 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폐쇄회로(CC)TV를 늘리라거나 영상 화질을 높이라는 식의 제안이 너무나 쉽게 나왔다. 안전과 자유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 특조위가 세운 원칙 중 하나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구조적인 곳에서 찾지 않고 개인에게 탓을 돌리는 일부의 잘못된 인식은 여전하다.
"참사가 예견되는 징후가 여러 번 나타났지만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이태원 참사의 본질이다. 특조위는 분쟁해결기관의 역할도 해야 한다. 왜곡된 시각들은 바로잡고, 희생자들에 대한 매도와 혐오가 해소되는 계기를 만들겠다. 이태원 참사는 '당신'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이기적이지만,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혹시나 내 아이가 그곳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사고였다. 단순히 요행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은 마음속에 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유족들이 마음을 열 수 있는 국가기관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특조위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 사무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