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10주기 콘서트, 아직도 우리는 '마왕'을 추억한다 [HI★현장]

입력
2024.10.28 10:23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2014년 10월 27일, 의료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신해철. 그가 떠난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를 사랑했던 음악 팬들의 가슴 속 여전히 그는 '영원한 마왕'으로 숨쉬고 있었다.

지난 27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신해철 10주기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 th : 고스트 스테이지'에서 넥스트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선 신화 김동완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고 싶어 하는데 아마 해철이 형도 여기 와 있지 않겠나. 다 같이 해철이 형 한 번 불러 보자"라고 외쳤다. 김동완의 말에 뜨겁게 환호한 관객들은 일제히 "해철이 오빠!" "해철이 형!"을 외치며 신해철을 향한 그리움으로 공연장을 채웠다.

넥스트의 베이시스트 김영석은 "팀의 맏형으로서 10주기 공연을 이렇게 크게 개최하게 돼 너무 영광이다. 해철이 동료로서 감사드린다. 그가 없는 자리에 너무 그리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좋은 시간으로 돌아가시길 해철이도 바랄거다"라고 말하며 끝내 울컥했다.

김영석의 바람대로 신해철의 10주기에 맞춰 진행된 이번 트리뷰트 공연은 슬픔에 잠겨있지 않았다. '마왕'을 향한 그리움과 애정으로 한 자리에 모인 수천 명의 관객들은 신해철이 남긴 이야기와 음악, 신해철을 위해 무대에 오른 선후배 가수들의 노래들에 뜨겁게 열광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신해철을 추억했다.

자신의 대표곡인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부르며 신해철을 추억한 이승환은 "10년 전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기기묘묘한 시대에는 해철이의 존재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라며 오랜 동료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는 "신해철은 최고를 뛰어넘는 '천재 예술가'였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나도 가요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뮤지션이었는지 반추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아마 해철이는 이런 장소라며 더 드높여서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노래들을 골라봤다. 해철이의 힘을 빌어 용기있게 무대를 해보겠다"라며 '물어본다' '돈의 신' '붉은 낙타' '슈퍼 히어로' 등으로 무대를 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신해철의 '크롬스 테크노 웍스' 앨범을 들고 나와 신해철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저도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오랜 찐팬이라 긴장이 된다. 신해철의 성공한 팬이 이 자리에 섰다. 이 무대에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쓰리기도 하고 되게 마음이 복잡하다"라고 말한 뒤 신해철을 향한 애정과 존경을 담아 편곡한 '그대에게'로 뭉클한 헌정 무대를 선사했다. 잔잔하게 재해석된 '그대에게'는 강렬한 밴드 사운드 대신 현악기와 멜로디언으로 채워졌으나 오히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라는 가사에 몰입하게 만들며 원곡 못지 않게 뜨거운 을림을 선사했다.

폭발적인 무대로 공연장을 달군 국카스텐은 '일상으로의 초대'에 이어 자신과도 인연이 깊은 곡(하현우는 '복면가왕'에서 해당 곡의 커버 무대로 큰 화제를 모았다.)인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헌정하며 관객들을 열광하게 했다. "신해철 포에버!"를 외친 하현우는 자신의 음악 생활에 신해철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하며 "선배님의 철학적인 모습들을 닮아가고자 실황 콘서트 영상을 굉장히 많이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선배님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돼서 제가 밴드를 하면서까지 굉장히 영향도 많이 받고, 음악적으로 많은 선물을 주셨던 분이다. 오늘 저 역시 팬심으로 이 곳에 왔다. 신해철 선배님께서 세상에 뿌리고 가셨던 것을 한번 더 추억하고 기억하는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먼 훗날 언젠가'로 국내 록 밴드의 전설인 대선배 신해철을 기렸다. 이들은 "이렇게 좋은 기회로 좋은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에 설 수 있어서 영광이다. 저희가 음악을 시작할 때 배웠던 선생님의 스승이 신해철 선생님이셨다. 어찌 보면 선배님 덕분에 저희가 이 자리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뜻깊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굉장히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라며 신해철의 트리뷰트 콘서트에 선 소회를 밝혔다.

전인권 밴드는 신해철의 곡을 부르진 않았으나, 대표곡들로 30여분 간 쉴 틈 없이 무대를 채우며 신해철을 향한 마음을 보탰다. 전인권은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돌고 돌고' '걱정말아요 그대' '사랑한 후에'를 열창하며 무대 곳곳을 누볐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자리에서 모두 기립해 전인권의 무대에 떼창으로 화답했다.

이날 공연 내내 철기군(신해철 팬덤)들은 저마다의 추억에 젖은 듯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모든 노래들을 떼창했다. 무대를 준비하는 사이 넥스트의 노래가 흘러 나오면 그마저도 빠짐 없이 따라 불렀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1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 '마왕'은 함께 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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