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27일 총선(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중의원 전체 465석 중 233석)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2012년 총선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과반 의석 확보이 위태로운 상황이라 '사실상 참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정권을 유지하려면 연립정권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약진하며 2009년 12월 총선 이후 최대 의석수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개표가 진행 중인 28일 오전 1시 15분 기준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180석을 확보했다. NHK를 비롯해 일본 언론은 "자민당 단독 과반 실패가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자민·공명당 과반 확보도 어려울 것으로 예측됐다. NHK는 "분석 결과 자민·공명당이 185~232석을 차지해 과반이 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대치를 얻어도 과반에 1석 부족해 연립 정당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정권 상실 위기에 처하게 됐다. 여권은 이 시간 기준 연립여당인 공명당(22석)을 포함해 202석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오전 1시 15분 기준 227석을 확보, 여권 의석수를 크게 웃돌았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142석, 일본유신회 34석, 국민민주당 24석, 레이와신센구미 7석, 공산당 6석 등을 확보했다.
제1야당이 100석 이상 차지한 것은 2005년 총선 이후 19년 만이다. 입헌민주당은 NHK 출구조사에서는 129~19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입헌민주당이 2012년 이후 유지된 자민당 1강 시대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민당의 부진은 '계파 비자금 스캔들'로 시작된 정권 심판론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자민당 계파 일부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거둔 지원금을 비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민당 지지율은 추락했다.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물러나고 이시바 총리가 지난 1일 취임했다.
중의원 조기 해산 승부수를 던진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스캔들 비판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연루 의원 46명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하거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자민당 심판 분위기를 뒤집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총선이 며칠 남지 않은 23일 비자금 스캔들로 공천을 배제한 후보 지부(한국 지구당에 해당)에 공천 후보와 같은 액수의 선거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자금 스캔들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입헌민주당 간부는 산케이신문에 "이 일로 단숨에 접전으로 바뀐 곳이 많다"고 말했다.
경제 문제도 여권의 패인 요소로 꼽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넘는 고물가가 계속되고, 사실상 실질임금이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본 국민의 불만이 컸다. 이시바 정권에 실망한 민심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아사히가 지난 21일 공개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3%에 그쳤다.
총선 결과 일본 정치는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입헌민주당이 약진했지만 단독으로 정권 교체는 불가능해 다른 야당과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도 후보 단일화에 실패할 정도여서 야권 결집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합종연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시바 총리는 연정 확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TV아사히 인터뷰에서 "비자금 스캔들로 매우 엄격한 심판을 받았다"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내건 정책 실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연립여당 공명당 외에 다른 야당을 끌어 와야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공명당은 일본유신회와의 연대에 일찍이 선을 그어 왔다. 또 자민당 내 선거 패배 책임론이 제기될 경우 '이시바 흔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