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대스타' '기민 킴'이랑 공연한다고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자랑하고 왔어요. 무용수들이 20세기 발레 전설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를 보며 자랐듯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김기민을 보며 자라는 시대거든요."(박세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이 돼 한국 무용수들에게 길을 열어 준 사람이 어려서부터 같이 춤추고 싶어 쫓아다녔던 (박세은) 누나여서 정말 자랑스러워요."(김기민)
15년 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최연소 주역 커플로 화제를 모았던 두 무용수가 오랜만에 다시 한 무대에서 만난다. '빡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악바리 근성으로 각종 국제 콩쿠르를 휩쓸던 박세은(35)은 어느새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로, 그런 박세은과 함께 공연해 발레리노들의 질투를 샀던 김기민(32)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돌아왔다. 박세은과 김기민이 오는 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하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 함께 캐스팅돼 한국에 왔다. 박세은은 무희 니키아, 김기민은 상대역인 전사 솔로르를 맡아 다음 달 1·3일 호흡을 맞춘다. 두 무용수의 전막 무대 파트너십은 14년 만에 성사됐다. 둘은 데뷔 공연인 '백조의 호수' 이후 2010년 8월 발레협회 주최 공연 '돈키호테'와 같은 해 10월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도 함께 출연했다.
27일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세은과 김기민은 서로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했다. 세계적 발레단의 간판 무용수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두 사람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오랜만이다. 발란신 페스티벌 참가 무용수로 각각 미국 뉴욕을 찾은 2018년이 마지막 만남이다.
두 사람은 "과거 함께 공연할 땐 다툼도 많았지만 지금은 설레는 마음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세은은 "나도 연습을 많이 하는데 기민이가 연습을 더 많이 요구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민은 "그때는 상대에게 공간을 내줘야 편한 걸 모르고 계속 한 번 더 해보자고만 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파리오페라발레단이나 마린스키발레단에서 (박세은) 누나와 함께 춤을 출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같이 데뷔한 국립발레단에서 다시 만나 의미가 더 깊다"고 덧붙였다. 박세은은 2015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 초청돼 니키아를 맡았고, 같은 해 12월 김기민이 파리오페라극장에 초청받아 솔로르를 연기했지만 둘이 함께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각 발레단의 공연 시즌이 한창인 시기에 한국 무대에 서게 됐다. 서로가 파트너라는 점, 그리고 전막 공연이라는 사실이 이들을 강력하게 이번 무대로 이끌었다. 김기민은 "발레 갈라로 한국 팬과 만나 왔지만 전막 공연을 하고 싶었다"며 "내가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한정적 레퍼토리만 선택하지 않게 좀 더 많은 발레 공연이 한국에 소개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세은의 니키아는 2010년 서울, 201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2022년 파리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박세은은 "2년 후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라 바야데르'가 공연될 예정인데 '라 바야데르'에 수없이 출연한 기민이와의 이번 무대로 더 확신에 찬 니키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김기민이 마린스키발레단 중국 공연을 마치고 이날 저녁 입국해 공연 전까지 합을 맞춰 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김기민은 "기술적 연습뿐 아니라 무대밖에서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는 과정도 리허설의 일부"라며 "전화 통화를 충분히 했고, (박세은의) 춤 스타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 리허설은 이미 다 돼 있는 셈"이라고 했다.
서로를 어떤 예술가로 바라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박세은은 김기민을 "자신이 추고 싶은 춤과 무대에 대해 확신이 있고, 그 확신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예술가"로 묘사했다. 김기민은 박세은에 대해 "내가 누나의 '집념'을 배워 노력하는 무용수가 됐듯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많은 무용수와 관객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