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증거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위성정보를 제공한 업체까지 노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가 계약할 수 있는 해외 민간업체가 한정된 상황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향후 위성 감시망을 피할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정보 출처가 공개되면 추가 수집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에서 "의욕이 넘친 국정원이 서둘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정원이 언론에 배포한 러시아 지역 북한군 훈련시설 두 곳의 위성사진을 27일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구글 어스'를 통해 역추적해봤다. 이 중 우수리스크의 경우 시내에서 8㎞가량 떨어진 시설로 확인됐다. 하바롭스크 훈련시설은 시내에서 약 40㎞ 거리였다.
두 곳의 위성사진 모두 국정원이 민간업체 'AIRBUS(에어버스)'에서 사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보도자료 사진에 이례적으로 에어버스라고 못 박았다. 우리 정부의 위성으로 찍은 사진에는 아무런 표기가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정보 소스를 공개한 것에 대해 정부는 북러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적 기밀해제(strategic declassification)'라는 입장이다. 경각심을 주려고 일부러 노출했다는 것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정보를 공개하는 건 북한과 러시아에 '많은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선 넘는 행동을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며 "정보 탐지력을 단순히 과시하는 게 아니고 추가적 행동을 못하도록 경고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북한군의 훈련시설에 더해 자료 출처까지 노출한 만큼, 북한과 러시아가 가만 있을 리 없다. 해당 위성을 피하려 조치를 취하기 마련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은닉 비용'만큼 우리의 '추적 비용'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국정원이 공개한 우수리스크와 하바롭스크 훈련시설 사진을 분석하면 정찰위성의 촬영시점과 궤도를 추정할 수 있다. 국정원이 밝힌 촬영시점은 16일인데, 사진 속 그림자 방향을 고려하면 하바롭스크 훈련시설은 오전 11시 30분경, 우수리스크 훈련시설은 오후 12시 30분경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시간대에 촬영된 각도의 방향을 고려하면 두 지역의 상공을 지나는 에어버스 위성이 어떤 것인지도 특정할 수 있다.
박 의원은 "정보 출처나 수집수단은 정보기관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이번 공개는 국정원 스스로 미래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 성급한 공개였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전략적 기밀해제를 놓고 해외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앞서 1월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전략적 기밀해제는 경쟁자를 약화하고, 동맹을 결집하기 위해 특정 기밀을 의도적으로 공개하는 것으로, 정책입안자들에 보다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지오 전 CIA분석관과 마이클 모렐로 전 부국장은 석달 뒤 같은 매체에 "무분별한 기밀해제는 전략적 효과를 떨어뜨리며 정보의 정치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보 공개로 적국이 정보역량을 강화하거나 잘못된 정보 분석으로 기관의 평판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