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K팝’을 검색했다. 독일에서 K팝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최초로 신설했다는 소식부터 K팝에 빠져 한국에서 아이돌 데뷔를 꿈꾼다는 캄보디아 공주 이야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K팝에 대해 종잡을 수 없는 소식들이 등장했다. K팝에 대해 대체 무슨 이야기까지 나오려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한국의 K팝 간판 기획사 하이브가 미성년 아이돌 그룹 멤버를 대상으로 자극적인 외모 품평이 담긴 업계 동향 자료를 작성했다는 소식이 떴다.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최근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소식이 알려진 뒤 터진 또 한 번의 충격적 뉴스였다. K팝을 사랑했지만 기획사들의 반환경적 마케팅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는 한 팬의 수기도 찾을 수 있었다.
K팝이란 키워드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딸려 나오다니. 더 믿기지 않는 건 이 모든 이야기에 누군가의 희생과 그로 인한 피로가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한 폐해는 곪다 못해 최근 속속 수면 위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작보다 반드시 높아야만 하는 초동(음반발매 첫 주 판매량) 기록을 세우기 위해 반품 가능 조건을 달아 이뤄진 '음반 밀어내기' 문제는 국감에서도 지적됐다. 앨범 소진을 위해 팬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벤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됐다. K팝 기획사는 돈을 쓴 마케팅으로 뮤직비디오 조회수를 늘리고, 일부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음원 차트 성적을 끌어올리려 음원 다운로드를 위한 공개모금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숫자, 즉 차트 순위는 K팝의 ‘인기’와 ‘우수성’을 대변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된 K팝 제작과 유통 방식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업계 내부의 균열로 인해 본격화됐다. 지난 4월 하이브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민 전 대표이사는 6개월 넘게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외비'로 감춰졌던 K팝 산업의 문제점들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하니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은 문화예술인들의 노동권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니의 호소는 대부분 미성년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K팝 아이돌의 또 다른 인권 논의로 이어졌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인 그룹 라이즈의 전 멤버 승한 이야기다. 승한은 사생활 문제로 10개월 동안 활동을 멈췄는데, SM이 그를 복귀시키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일부 팬들이 극렬한 단체행동을 한 끝에 탈퇴로 결론 났다. K팝 업계의 각종 사건·사고에 노이로제가 걸린 팬덤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기름을 붓는 기획사의 안일한 대응이 합쳐진 결과다. 그 과정에서 불과 이틀 만에 '복귀'에서 '탈퇴'라는 나락을 경험한 한 '사람'과 그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제 굳이 더 검색해 보지 않아도 알겠다. 2024년의 K팝은 웅장하고 거대한 피로사회 그 자체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고질적 문제들의 장단에 맞춰 여론은 매분, 매초 널을 뛴다. 언론은 문제를 고찰하기는커녕 최대한 빨리 전달하는 데만 급급했다. 어제는 맞았던 일이 오늘은 틀리고, 어제의 동료는 어느새 오늘의 적이 된다. 이 태산 같은 피로가 K팝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던 K팝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위기 탈출을 위한 질문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돼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