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질문은 안 받아요"… 알리고 싶은 것만 말하는 검찰의 '공보 편의주의'

입력
2024.10.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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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공보 '중요 사건'은 검사장 지정
'조국 법무부'가 공보대상 제한 시작해
한동훈 개정 후 檢 자의적 해석 소지↑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이미 저희가 처분했고, 고발인이 항고를 예고하기 때문에 오늘 공보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일주일 뒤인 24일. 서울중앙지검은 출입기자단 상대 비공식 브리핑(티타임)에서 4차장검사가 지휘 중인 사건 일곱 개를 열거하며 "(이 범위에서만) 관련 사항을 질문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가 가장 궁금했던 기자들이 관련 질문을 하자, 검찰 관계자는 "오늘 공보 범위가 아니니 공보관에게 별도로 문의해 달라"고 답했다.

검찰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운영 중인 출입기자단 티타임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통로'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수사 중인 사건이나 여론의 관심이 많은 사건이라면 언론의 질문 범위에 '금기'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사실상 검찰은 자신들이 미리 지정해 둔 사건에서만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한동훈 거친 브리핑 제한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티타임 대상 사건을 미리 정하고 이 외 질문을 받지 않는 현행 방식은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만들어진 공보 규정으로 시작해 한동훈 장관 시절에 정립됐다.

조 전 장관은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 수사 중인 사안의 언론 공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공보를 위해선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치게 했다. 당시 법무부는 언론과 수사팀 접촉을 막고 수사에 참여하지 않는 전문공보관을 통해서만 공보하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받아쓰기만 하도록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정권 교체 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2022년 7월 기존 공보준칙 훈령을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으로 개정했다. 이로써 차장검사가 직접 구두 공보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며 티타임이 부활했지만, 공보 대상 제한은 여전했다. ①국민적 관심이 있는 등 중요 사건에서 ②소속 검찰청 수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티타임을 실시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문제는 어떤 사건이 공보 대상인지 검찰청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티타임 대상 사건을 정하는 요건 중 △수사에 착수된 중요사건으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가 각 검찰청 재량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중요사건'은 '사회의 이목을 끌 만한 중대한 사건'(피의자 또는 피해자의 신분·범행방법·범행결과가 특이·중대하거나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에 크게 보도돼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사건)이라는 주관적 기준으로 정의돼 있어, 검찰이 알아서 판단하는 구조다. 도이치 사건이 공보 대상에서 빠진 건 "종결 시 충분한 공보가 이뤄졌고 항고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사건"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당 돈 봉투는 적극 설명하면서...

결국 검찰이 공보준칙을 '이어령 비어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 현직 차장검사는 "규정이 애매해 주체인 검찰이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며 "공보 대상을 검찰이 쥐고 있는 '조국 법무부' 지침이 여전히 악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부장검사도 "규정을 만들어 놓으면 다 유리하게 해석하려 하고, 그걸 이용하려고 하는 감이 있다"고 꼬집었다.

같은 부서 사건이라도 공보 수준은 제각각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올해 6월 티타임에서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해선 "3차 소환에도 의원 7명 전원이 불응했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했지만, 도이치 사건에 대해선 "구체적 수사 상황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만 했다. 둘 다 반부패수사2부가 수사 중인 사건이었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검찰이 공보 과정에 국민의 알 권리와 사건 간 형평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공보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보장하고 있는지 반성적 고려를 해야 된다"며 "사생활 보호와 언론의 취재 자유는 모두 헌법상 권리인 만큼 '피의사실공표죄'나 '장관 지시에 따른 훈령'으로 막을 일이 아니라, 다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선 '피의사실공표죄'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검찰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가 엄연히 살아 있고, 함부로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에 대해 얘기하면 명예훼손으로도 얼마든지 처벌받을 수 있다"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수 기자
최동순 기자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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