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이면 이태원 참사 2주기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별이 된 아이를 마음에 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왜 내 자식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따져 묻기 위해, 다시는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리에 몸을 던지고, 아스팔트 위를 굴렀다. 그리고 이젠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난다. 제주 4·3사건, 광주 5·18 민주화운동, 4·16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다. 2주기를 앞둔 이달 27일(광주 교구청 대건문화관·오후 3시)과 28일(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오후 4시) 막을 올리는 연극의 제목은 '사난살주'. '살아 있으니 살아간다'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연출가 방은미씨와 배우 현애란씨 그리고 연극에 직접 출연하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를 만났다.
사난살주는 1인극 네 개가 모인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4·3은 배우 현애란씨가, 5·18은 배우 김호준씨가 각각 연기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유족이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한 뒤 관객과 대담한다. 이 과정을 통해 유족들은 위로받고, 관객들과 연대한다. 연출가 방씨는 "유족들을 마주할 때 관객들은 뜨거운 지지자가 되고 (참사를 널리 알리는) 스피커가 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족 문씨는 "관객들의 숨소리, 고개 끄덕이는 모습, 침 튀기는 것까지 하나하나 다 느껴진다"며 "그게 참 좋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족이 무대에 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이겨내야 가능한 일이다. 이태원 유족 이기자씨는 3월 제주 초연엔 직접 출연했지만 두 달 뒤인 5월 광주 공연엔 남편이 대신 나섰다. 이번 이태원 2주기 공연 땐 이씨도 남편도 무대에 서지 않기로 했다. 공연이 끝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다. 이씨는 제주 공연 이후 한 달간 먹지 못해 거식증에 걸리기도 했다. 2주기를 앞두고 또 온몸이 아파 이번엔 이씨 편지를 조진선 수녀가 대독한다. 방씨는 "얼마나 힘드셨을지 헤아리지 못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함께 해주셨던 데 감사해서 한참 눈물이 났다"고 이씨를 위로하며 고마워했다.
세월호 유족 문씨 역시 진이 빠질 정도로 힘들지만 꿋꿋이 버티며 무대에 오른다. 그는 지난해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10년간의 진상규명 여정을 기록한 '바람의 세월'이라는 영화를 제작해 전국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번은 모자를 푹 눌러쓴 젊은 여성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참사 이후 바깥을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가, 이 영화를 보려 나왔다고 한다. 문씨는 "그 말에 큰 힘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방씨가 연극을 기획한 계기는 4·3이었다. 제주에 사는 방씨는 친한 친구의 외할아버지가 당시 교사라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친구의 80대 어머니 말을 하나하나 받아 적어 대본을 만들었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 아래 한 가족이 얼마나 큰 비극을 겪었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잠시 서울로 올라온 방씨는 이태원에 있는 후배 작업실에 머무르다 참사가 난 골목을 마주했다. 방씨는 골목이 '커다란 관'으로 보였다고 했다. "한 명 한 명 숨을 못 쉬고 외롭게 죽어가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4·3 토벌꾼들이 구덩이를 파 민간인들의 시체를 묻던 장면과 겹쳐졌죠. 아, 4·3도 5·18도 세월호도 마찬가지구나. 결국 국가가 살릴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방씨는 틈만 나면 이태원 골목에 가 기도를 했다. '외롭지 말아라' '찬란한 청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 그 간절한 마음이 연극의 바탕이 됐다. 4·3과 5·18 유족들의 경우 지방에 있기 때문에 전국을 돌며 공연하기 어렵단 생각이 들어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연기할 배우들을 모았다. 4·3에 출연한 배우 현애란씨의 고향은 제주. 그는 참여를 수락한 이유에 대해 '일말의 양심'이라고 답했다.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고려할 게 많았지만 예술가로서 내가 서야 할 곳은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난살주의 뜻을 묻자 문종택씨는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산다, 또는 이왕이면 사람답게 제대로 살자, 아니면 역설적으로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탄식으로도 들린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방씨는 "이 모든 죽음에 국가가 가해자라는 걸 깨달으며, '사난살주'가 시작됐고, 국가의 잔혹함과 냉혹함이 '사난살주'하게 한다"며 "별이 되신 분들과 이 땅에 살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내야 하고, 신음하시는 모든 분들께 기도의 마음으로 이 공연을 바친다"고 말했다.
사난살주 연극 공연을 위해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와 광주 인권평화재단이 힘을 보태줬다. 출연 배우들의 차비와 연습 대관료 등은 방씨가 사비를 털어 마련했다. 홍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한 게 전부였고, 팸플릿은 스태프들이 일일이 인쇄해 접었다. 예약도 방 감독이 직접 전화로 받았다. 이렇게 준비한 3월 제주 초연은 150석 전석이 매진됐다. 취소표가 나오면 알려달라며 대기를 건 사람만 50명이었다. 모인 후원금은 100만 원에 달했다. 이후 5월 광주, 이달 광주와 서울에 이어 11월 대전에서도 공연이 열린다. 공연은 전석 무료다. 방씨는 "대학이든 공연장이든 대관만 가능하고 보려는 의지가 있는 분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공연할 수 있다"며 "진실을 밝히는 데 유족들과 끝까지 같이 하고 싶다. 외로워하지 마시고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