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새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등장한다. 옷 사이로 속에 받쳐 입은 새파란 옷이 언뜻 보인다. 머리엔 샛노란 모자를 쓰고 있다. 파스텔톤 풍속화에서 눈에 띄는 강렬한 삼원색의 조합이다. 이 유별난 차림새의 주인공은 '별감', 국왕을 경호하는 군인이다.
별감은 왕실의 잡무를 담당하는 액정서 소속이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인물들의 경호, 명령 전달, 대궐 문단속은 물론, 사적인 심부름까지 도맡았다. 이들은 본업보다 부업으로 유명하다. 별감의 부업은 유흥업소 운영이다. 한양 기생들의 뒷배를 보아주는 이가 별감이었다. 별감은 조선후기 유흥계를 장악했다.
별감의 월급은 쌀 열 말 남짓이다. 한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제때 받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돈으로 유흥계를 장악했을까. 국립중앙도서관의 '별감방일기'에 그 비밀이 있다.
'별감방일기'는 액정서의 업무일지다. 1864년부터 1890년까지 20여 년간의 기사만 남아 있다. 업무일지라지만 누가 언제 무슨 명목으로 얼마를 별감에게 주었는지 기록한 장부에 가깝다. 자세히 보면 왕실과 관료에게 반강제로 뜯어낸 돈이 대부분이다. 국왕 생일을 맞았으니까, 왕비 친척이 과거에 급제했으니까, 승진했으니까, 세자가 태어났으니까, 처음 궐 밖으로 행차했으니까 등 왕실에 이벤트가 있으면 온갖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다. 지방관 부임을 앞두고 하직 인사차 대궐을 방문한 관원들 역시 어김없이 돈을 뜯겼다.
'승전놀음'을 위한 찬조금도 빠지지 않는다. 승전놀음이란 백여 명의 별감이 기생과 악공을 대규모로 동원하여 벌이는 화려한 잔치다. 1866년 천주교도 색출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별감들은 국왕과 고위 관원 40여 명에게 4,470냥을 받아내 잔치를 벌였다. 쌀 900섬에 달하는 금액을 한 번의 잔치로 탕진했다. 임오군란으로 대궐이 뒤집어진 이후로도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뜯어낸 돈으로 유흥계를 장악했다.
조선의 모든 관청은 문신 관료 통제하에 놓여 있었지만 액정서는 예외다. 왕실의 비공식적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액정서 소속 별감은 중인 신분이면서도 왕실의 권위를 믿고 관료와 자주 충돌했다. 왕실로서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고종도 명성황후도 대원군도 별감에게 돈을 뜯겼다. 별감은 조선 말기 재정악화와 부정부패의 공범이었다. 권력의 부패는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통제받지 않는 측근의 존재는 권력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