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이 미비해 편의점, 약국, 카페 한 번 제대로 이용하기 힘든 장애인들이 낸 소송에서 정부 측이 “소매점 대신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생활인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충격적인 발언이다. 대법관조차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체장애인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소송 상고심 공개 변론을 열었다. 1998년 제정된 구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이 지체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를 ‘바닥면적 합계가 300㎡ 이상의 시설’로만 정해, 전국 편의점의 3% 정도에만 적용됐다. 2018년 장애인들은 “국가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가 위법하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고, 이후 2022년에야 시행령은 ‘바닥면적 합계 50㎡ 이상 1,000㎡ 미만 시설’로 개정됐다.
이날 참고인 발언에 나선 지체장애인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의 증언은 절규에 가깝다. “카페를 가려고 해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카페를) 못 찾아 결국 길에서 이야기하고 헤어지고, 물을 사려고 해도 편의점을 못 가고, 머리를 깎고 싶어도 이용원을 못 간다.”
이에 정부 측 대리인은 “(장애인들은) 소매점 대신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다. 편의시설이 상당히 갖춰진 대형마트 이용도 할 수 있다. 또한 활동보조사를 통해 대신 구매할 수도 있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정부 측 입장을 비판한 대법관들의 지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경미 대법관은 “(소매점 접근권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는 것에 놀랐다”며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하라는 것’이고 쉽게 치환되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가 5%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예 (권리가) 없는 것과 같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약자 보호 의무가 있는 정부 측이 “장애인들은 온라인 쇼핑을 하면 된다”는 공개 발언을 할 정도로 무지하다는 게 개탄스럽다. 이번 소송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공직사회 구성원들은 곳곳에 약자 차별 제도들을 방치하면서 핑곗거리만 찾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