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미국의 작가 존 하워드 페인(1791~1852)은 노래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에 이런 가사를 붙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부른 노래지만, 이제는 의문이 생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어떤 공간인가. 일본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48)의 장편소설 ‘노란 집’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노란 집’의 주인공은 일본의 유흥주점 스낵바에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욕실도 없는 작고 낡은 집에서 사는 ‘하나’. 그는 열다섯 살 여름에 엄마의 지인인 30대 여성 ‘기미코’를 만난다. 술과 친구를 좋아해 낯선 어른을 집에 자주 데려오는 엄마는 정작 딸인 하나에게는 얼굴도 보기 힘든 존재였다. 이처럼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도 “하나네는 이상한 어른들이 드나들고 제대로 된 집이 아니니까”라는 이야기를 듣는 외톨이였던 그에게 기미코는 집의 의미를 처음으로 감각하게 해준다. 요리다운 요리를 해주고, 시시껄렁한 대화의 즐거움을 알게 한 기미코는 떠나면서도 하나를 위해 냉장고를 음식으로 잔뜩 채워뒀다.
그런 하나가 2년 후 다시 나타난 기미코의 “나랑 같이 갈래”라는 말에 두말없이 따라나선 건 당연했다. 두 사람은 ‘레몬’이라는 이름의 스낵바를 열고, 여기에 저마다의 사정을 품은 '란'과 '모모코'라는 10대 소녀가 합류하면서 이들은 일종의 유사 가족이 된다. 마냥 즐겁던 공동생활에 낀 갑작스러운 먹구름에 어떻게든 집을 지키려는 하나는 크고 작은 범죄를 거듭한다. 필사적으로, 또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는 궤변과 철학 사이에서 말한다. “따지고 보면 나쁜 일인데. 자, 그럼 틀린 인생을 살고 있느냐? 아무래도 그건 또 아니다 싶거든요.”
작가 가와카미는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심판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그저 “전력을 다해 생을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고자 했다는 작가의 의도는 또 다른 등장인물 ‘영수’에게서도 읽힌다. 스낵바로 인해 하나와 얽히는 영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부모가 한국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밖에 모르지만,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그는 그저 살아남으려 했으나 범죄 조직과 도박 등 온갖 불법과 엮였다.
‘노란 집’에서 하나와 영수가 바란 집은 대단치 않았다. 그저 남들 같은 보통의 삶. 그럼에도 태어난 순간, 보통에서 이탈한 이들에게 그리로 가는 문턱은 높았다. 이는 경계선 지능인으로 유추되는 기미코도 마찬가지다. 서쪽에 노란색을 두면 금(金)운이 들어온다는 미신을 믿는 하나가 방 서쪽 선반에 노란색 소품을 모아놓고 집을 노랗게 칠해도 그의 손에는 돈이 잡히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러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을 기대할 수 없는 이야기다.
가와카미 작가 역시 생계를 위해 공장과 치과, 서점은 물론 술집까지 여러 곳을 거치며 일했다. 40대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인 적 없었다는 그다. 한때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으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다가 2007년에 첫 소설을 냈다. 그는 ‘노란 집’의 배경이 1990년대라면서 “내 청춘과도 겹쳐있어 언젠가 (이 시대를) 제대로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일본 신문에 연재하면서 동년배의 여성 독자로부터 “나 역시 자칫하면 하나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소설 ‘젖과 알’로 2008년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작가로 자리 잡은 가와카미는 이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2022년)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2023)로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 됐다. 그저 “눈앞의 일을 열심히 해왔다”는 그는 올해 2월 ‘노란 집’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고 말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써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