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IMF 때 두산 구조조정 책임졌던 유병택, 여든에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입력
2024.11.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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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택 제 3대 하나학원 이사장 취임
두산그룹 총괄부회장까지 지낸 '기업가' 출신
하나금융지주 이사회서 하나고 설립에 참여
한양대 특임교수로 활동 "인재 양성 보람차"
2018년부터 하나고 이사... 운영 이해도 높아
"AI 시대 걸맞게 변화 필요... 새 커리큘럼 도입"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에 만족하지 말고 변화해야 할 때입니다
유병택 하나학원 이사장

유병택 제 3대 하나고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의 당찬 포부다. 올해로 80세. 적지 않은 나이에도 재계와 금융계에서 활약한 그가 교육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 이사장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인재 양성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나고는 2008년 하나금융지주가 설립한 전국 단위 자율형 사립고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초대 이사장, 제2대 이사장은 김각영 전 검찰총장이 맡았다. 유 이사장은 1일 취임해 4년 동안 하나고를 이끈다.


두산그룹서 배운 교훈..."변화는 시기가 중요"


유 이사장은 두산그룹에서 총괄부회장까지 지낸 기업가 출신이다. 그가 기업 경영에서 배운 교훈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다. 유 이사장은 두산 기획조정실장 시절 일화를 꺼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가 오기 3년 전인 1995년에 미국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그룹에서 가장 큰 기업인 오비맥주 현금 흐름을 보니 3년 안에 망할 수 있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며 "당시만 해도 은행 차입도 문제없어서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차분히 설명을 들으니 맥킨지의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산은 오비맥주 자산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비핵심 부동산, 합작회사 주식 등을 팔아 현금 3조 원을 마련해 부채를 절반 이상 갚았다. 이 작업을 마무리하자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들이닥쳤다. 유 이사장은 "30대 기업이 스러져나갈 때 오비맥주는 버텨냈다"며 "그 뒤로 두산그룹은 오비맥주를 매각하고 한국중공업, 대우기계를 사들여 중화학 공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고 떠올렸다.


하나고 설립 참여..."인재 양성, 돈 보고 하는 것 아냐"


유 이사장은 2007년에 두산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2008년 하나금융지주와 인연이 시작됐다. 이사로 활동하다 2012년에는 하나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됐다. 그리고 하나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유 이사장은 "2008년 당시 김승유 회장이 870억 원을 들여 고등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이사회에서 돈이 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며 "그때 인재를 기르는 건 돈 보고 하는 게 아니다라는 의견을 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하나학원 이사로 활동해 하나고 운영 전반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한양대 경영대·경영대학원에서 '지속가능경영' 'ESG 경영'을 주제로 직접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이때를 "인생에서 제일 보람 있고 즐거웠던 때"로 꼽았다. "아내가 고시 준비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열심히 강의 준비를 했다"는 유 이사장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보람이 상당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기업의 ESG 경영 케이스를 두루 분석해 학생들과 호흡하며 수업할 땐 재밌었다"며 "학생들도 만족도가 높았는지 강의 평가 점수를 후하게 줬다"고 말했다.


"AI 시대 인재 키울 것...재원 하나금융에 적극 요청"


유 이사장은 하나고 이사장으로 선임된 배경을 묻자 조심스럽다고 운을 뗀 뒤 ①기업에서 변화를 이끈 경험과 ②교육에 대한 애착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하나학원에서 거는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며 "하나고가 첫 신입생을 받은 지 13년이 지났는데 그사이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산업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그에 걸맞게 하나고의 교육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커리큘럼을 구상 중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구성 차원에서 해외 명문고와 교환 학생 제도를 도입하고 교육 시설에도 열심히 투자할 계획이다. 그는 "이를 위한 재원은 하나금융지주에 적극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유 이사장은 "하나고는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다"라면서도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는 것만이 하나고의 존재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실력을 인정받는 대한민국 미래 인재를 기르는 학교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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