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트럼프 폭풍, 대비는 됐나

입력
2024.10.24 04:30
26면
6·25전쟁 때 스탈린의 냉혹한 계산
북한 파병으로 러시아 위협 대두
트럼프 당선시 리스크 '첩첩산중'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6ㆍ25전쟁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는 북한 침공 직후 소집된 유엔 안보리 회의에 소련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다. 거부권을 가진 소련의 불참 덕에 북한 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지원을 권고한 유엔 결의안이 통과돼 유엔군 탄생이 가능했다.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했던 소련의 스탈린이 왜 유엔의 남한 지원 결의는 막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미국의 신속한 참전을 예상하지 못한 스탈린의 실수 내지 오판 때문이란 견해가 기존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미국의 참전을 유도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의 참전에 따른 중국의 개입 등을 예상하고 미국과 중국 양측의 전력을 소진시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었다는 것인데, 스탈린이 당시 체코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 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미국이 극동에 묶여 있는 동안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등 세계의 세력 균형에서 소련이 유리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공산권에서도 소련의 안보리 불참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스탈린이 뒤늦게 자신의 오판을 둘러 댔을 가능성도 있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이 전문만으로도 한국인으로선 소름 끼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소련에 유리하다는 스탈린의 사고방식은 끔찍하지만, 강대국 간 패권 경쟁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없는 게 아니다.

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 한반도 내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러시아가 최근 위협적인 그림자를 다시 드리우고 있다. 지난 6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이 포함된 북러 조약을 체결하더니, 급기야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상당한 병력을 보내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걱정인 것은 이 파병의 반대 급부, 즉 한반도에 돌아올 영향이다. 북한이 그야말로 러시아와 혈맹 수준의 관계를 만들어 뒷배로 삼은 게 여러모로 불길하다.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물 건너갔을 뿐 아니라 북한의 도발 수위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한미의 강력한 응징력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왔지만,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이 담보된다면 북한이 국지 도발을 감행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런 리스크에 더해 미국 쪽에선 ‘트럼프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다음 달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한국의 안보 상황은 ‘시계 제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북러 밀착에 비해 한미 동맹은 트럼프 변수로 삐걱댈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대통령 재임 시 한미군사훈련을 돈 낭비라고 여겼고, 주한미군 감축ㆍ철수도 진지하게 고려했다. 당시 주변 참모들의 만류로 주한미군 카드가 의제에 오르지 않았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그의 성향과 의도가 그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 내각이 충성파들로 구성돼 더 이상 트럼프를 제지할 이들은 없을 터다.

비즈니스 관계로 한국을 대하는 트럼프가 한반도를 놓고 러시아, 중국, 일본 등과 어떤 거래를 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1기 재임 때 못다 이뤘던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졸속적인 타협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전쟁을 마치 체스판 위의 말처럼 여겼던 스탈린식 사고방식이 적나라한 현실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윤석열 대통령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철없이 떠든다"는 부인 평가의 진위를 따질 필요도 없이, 보수 진영이 일궜던 북방 외교의 성과를 모조리 날려 먹은 그간의 행태로 보건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송용창 뉴스1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