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혈당 다이어트 마케팅' 난립하는데...식약처 단속은 '0건'

입력
2024.10.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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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관리앱 광고 심의 기준 마련 불구
단속·신고 없어 과다·허위  광고 횡행
과열 경쟁에 소비자 피해 우려 가중
업계 자정 노력·적정 규제 개입 필요


"2주간 붙여놓으면 알아서 체크되고 인공지능(AI)이 분석까지 해줍니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거죠." 현직 한의사는 유튜브 채널에서 연속혈당측정기(CGM)와 이를 활용한 혈당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를 다이어트 제품으로 열심히 홍보했다. 24시간 혈당 수치를 모니터링하면 쉽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이 영상은 해당 앱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받은 유료 광고인데, 현행법상 의료기기에 허가된 것 이외의 효능을 홍보하는 불법 소지가 있는 광고다.

"일반인의 경우 혈당 억제 통한 체중 감량. 의학적으로 검증 안 돼"

23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업체들이 연속혈당측정기와 혈당관리앱 서비스를 '혈당 다이어트' 마케팅에 남용되고 있는데도, 지난 1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위반 행위도 적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식약처와 의료기기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회의를 열어 당뇨환자가 쓰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앱 서비스를 일반인한테 다이어트 제품으로 홍보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광고 심의를 강화하기로 했었다.

연속혈당측정기는 피부에 미세한 바늘이 달린 센서를 붙여 24시간 실시간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의료기기다. 혈당관리앱은 연속혈당측정기가 수집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단과 운동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당뇨환자의 치료를 돕도록 개발됐다. 문제는 당뇨환자에게 혈당관리를 통한 체중관리 효과는 확인됐지만, 일반인에게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식 입장이라는 점이다. 앞서 대한비만학회·대한당뇨병학회 등은 지난 3월 성명서를 통해 "일반인의 경우 혈당 억제를 통한 체중 감량이 의학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수십만 원에 달하는 연속혈당측정기와 혈당관리앱을 구입하는 건 과도하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출시된 혈당관리앱들, 대부분 광고 심의 인증 없어

하지만 식약처가 지난 1년간 손을 놓으면서 연속혈당측정기와 혈당관리앱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체중 관리가 가능하다는 허위 또는 과다 광고가 폭증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혈당을 낮추는 방식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낸다고 알려진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국내 출시되면서 혈당 다이어트 마케팅에 기름을 더욱 붓기도 했다. 국내 출시된 애보트와 메드트로닉, 아이센스 등 연속혈당측정기와 이와 연동된 혈당관리앱들은 패키지로 묶여 ‘혈당 다이어트’란 명목으로 20만 원 안팎에 판매되는 중이다. 그런데 대부분 혈당관리앱들은 광고 심의 인증도 없이 다이어트 홍보용 제품으로 설명돼, 신고하면 모두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행정 처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한 혈당관리앱 개발사 대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셜미디어(SNS)에서 다이어트 마케팅을 앞세워 가입자를 늘리는 중"이라며서 "광고 심의를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식약처가 직접 단속하진 않아 업체들끼리 신고하지 않는 공생적 평화 시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식약처의 소극적인 대처가 헬스케어 시장에 악영향

이 때문에 식약처의 소극적인 대처가 결국 관련 헬스케어 시장 형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식약처는 지난달 11일에서야 10여 개 관련 업체를 대상으로 '의료기기 유통 안전관리 협조 요청'이란 제목으로 경고성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대웅제약 관계사이자 창업주 3세가 경영하는 엠서클은 혈당관리앱 '웰다'를 출시, 적극적으로 체중과 체지방 감소 기능을 홍보하는 중이다. 역시나 의료기기 광고 심의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규제 개입으로 헬스케어 신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과열된 경쟁과 무자격자들의 난립을 정제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주요 포털 판매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연속혈당측정기와 혈당관리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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