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개막한 브릭스(BRICS) 정상회의 메시지는 결국 '러시아 국제 위상 과시'로 집중됐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가장 많은 국가 정상들이 모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제사회 영향력이 확인된 셈이다. 크렘린궁은 물론 미국 언론들도 "푸틴 대통령이 대(對)서방 외교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였다. AP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카잔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각각 만났다. 건강을 이유로 행사에 불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도 전화통화를 했다. 브릭스 '원년 멤버' 국가 정상 모두와 회담한 셈이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불참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 영장을 발부했던 탓에 남아공 방문이 어려웠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의 외교 행보를 두고 "미국과 동맹국에 자신은 외톨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미국 블룸버그통신)가 나온 이유다.
실제 러시아와 브릭스 회원국들은 '밀착'을 과시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놓았다. 시 주석은 "국제 무대의 심각한 변화가 중국·러시아 관계를 훼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도 "인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에 대해 지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러시아는 소중한 동맹이자 친구"라고 말했다.
서방의 통화 제재를 돌파하려는 모습도 부각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지우마 호세프 신개발은행(NDB) 총재를 만나 브릭스 회원국 간 현지 통화 결제 비중을 늘리자고 강조했다. NDB는 '달러 패권'으로 상징되는 미국 주도 국제금융 질서에 맞서겠다며 브릭스가 2014년 출범시킨 자체 개발 은행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SWIFT)에서 퇴출당한 상황에서 NDB의 '탈(脫)달러' 기조는 푸틴 대통령에게 보다 각별해졌다.
러시아를 제외한 비(非)서방 국가들이 브릭스 정상회의를 계기로 합종연횡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디 총리는 이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만났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지난 7월 취임한 이후 첫 인도·이란 정상회담이었다. 양국은 이란 항구 및 교통로 개발 등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 시 주석과 모디 총리도 23일 만날 예정이다.
올해 1월부터 브릭스 정식 회원국이 된 이집트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에티오피아의 참석도 주목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과 만났다. 23, 24일에는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과 회담할 예정이다. 미국 CNN방송은 "국제질서 변화를 기대하는 국가들이 점점 브릭스로 몰려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날 브릭스 회의에서 확인된 국제사회 지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나 노테 제임스마틴비확산센터(CNS) 연구원은 미국 뉴욕타임스에 "브릭스의 대러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이어지는 데 기여했지만 러시아가 승리를 하도록 돕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브릭스 정상회의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대외 과시성) '쇼'에 가깝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