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해병대원 사망 수사외압 의혹 등 주요 사건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와중에, 심각한 인력난까지 겪으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채 상병 사건과 '고발 사주' 의혹 등 자신과 관련된 사건 담당 검사들의 연임 재가까지 미루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23일 공수처에 따르면 이날 기준 공수처 검사 현원은 18명이다. 정원 25명 가운데 7명(28%)이 결원이다. 연임 희망원을 제출하지 않은 채 27일 임기가 만료되는 수사2부 김성진 검사, 최근 사표를 내 아직 수리되지 않은 박석일 수사3부 부장검사와 수사2부 소속 김상천 검사를 포함하면 결원은 10명으로 는다. 부장검사의 경우 수사1·3부 부장, 인권수사정책관 등 세 자리를 채워야 한다.
공수처는 지난달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의 신규 채용을 추천했고, 이날 역시 부장검사 3명, 평검사 4명의 채용 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난달 추천된 신규 채용 인원에 대해선 윤 대통령의 임명 재가가 나오지 않았고, 이번에 새로 채용할 이들에 대해선 12월은 돼야 임용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는 출범 후 정원을 모두 채운 적이 없다.
특히 이번엔 윤 대통령이 신임 검사 임명안은 물론, 기존 검사 연임안도 임기 종료일(27일)이 코앞에 다가오도록 재가하지 않고 있다. 연임 재가 지연은 주요 사건 처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대환 수사4부 부장검사와 차정현 수사기획관(부장검사), 수사3부 소속 송영선·최문정 검사가 연임 재가 대상인데, 이 가운데 이 부장검사와 차 부장검사는 해병대원 수사 외압 의혹 수사를 맡고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수사검사는 평검사 한 명뿐이다. 당장 연임안이 어떻게 될지 몰라 수사를 진척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 달 1일 손준성 검사장 항소심 선고를 앞둔 고발 사주 의혹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수사를 지휘했던 김명석 전 부장검사가 올해 6월 떠나면서 이대환 부장검사가 공소유지를 넘겨받은 데다가, 항소심 선고 직전 이 부장검사의 연임 여부마저 확정되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연임 재가 논란이 대두되기 전부터 이미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제대로 진행되지 않던 터였다. 채 상병 사건의 경우 올해 초·중순 국방부 등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진행하면서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윗선에서 흐름이 끊긴 모양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감사원 표적감사 의혹은 지난해 말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 소환 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이성윤·박은정 의원의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감찰' 의혹 사건은 수사를 본격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담당 검사가 떠나게 됐다.
인력난이 지지부진한 수사로 이어지고, 이와 관련한 피로감이 인력 채용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공수처 검사는 "1기 처·차장 때부터 검사, 수사관 사이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불신하는 등 분위기가 안 좋았다"면서 "새로운 지휘부가 오면서 분위기를 다잡을 줄 알았으나, 그러지 못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이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서, 또 다른 논쟁적 사건을 떠안을 가능성도 생겼다. 공수처는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불기소 처분을 하기 전 관련 고발장을 접수해, 최근 검찰에 수사 기록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