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일부 병력이 이르면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처음 배치될 것이라는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 판단이 나왔다. 이미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인물들 모습과 함께 “힘들다야” 등 북한 억양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도 추가 공개됐다. 현재까지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사실로 공식 인정한 국가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뿐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정황이 잇따르는 셈이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장은 22일 보도된 미국 군사매체 ‘워존(The War Zone)’ 인터뷰에서 “우리는 내일 쿠르스크 방면에 (북한군) 첫 부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접한 러시아 쿠르스크주(州)는 지난 8월 기습 공격을 가한 우크라이나군에 현재 수백㎢ 이상이 점령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추가 진격을 방어하는 작전에 북한군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부다노우 국장의 관측이다. 다만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며, 북한군의 정확한 병력 규모나 보유 장비 등도 불분명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러시아에 파병된 듯한 북한군 병사들 모습을 찍은 동영상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22일 러시아 독립 언론 아스트라의 텔레그램 계정에 오른 영상을 보면 북한군 추정 군인들이 3, 4명씩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흡연하고 있으며, “힘들다야” “늦었어” 등 북한 말투 음성도 또렷이 들린다. 아스트라는 “이 영상의 촬영 위치를 확인한 결과, (극동) 프리모르스키 크라이의 세르게예프카 마을에 있는 러시아군 제127차량화소총사단(44980부대)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증거로 볼 만한 동영상은 지난 18일부터 연달아 공개됐다. 우크라이나군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엑스(X)에 게시한 영상에는 러시아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장에서 동양인 군인들이 줄지어 보급품을 받는 장면과 함께 “넘어가지 말거라” “나오라야” 등 음성이 담겨 있다. 친(親)러시아군 텔레그램 채널 파라팩스가 게시한 다른 동영상에는 북한군 수십 명이 뛰어가는 모습, “내가 선두다” “같이 가”로 들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신중 모드’를 계속 유지하며 공식 확인에는 선을 긋고 있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22일 ‘한미 간 북한 군사 활동 분석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은 특정 정책 영역에 대한 언급을 하기 전에 자체 프로세스와 평가를 거친다. (이때) 다른 어떤 국가(의 정보 분석)를 반영하지 않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했다는 한국 국가정보원 발표(18일)에 여전히 거리를 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의 적극적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수차례 언급해 온 그는 22일 연설에서도 “6,000명씩, 2개 여단의 북한 군대가 훈련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총 1만2,000명 병력을 러시아에 보내기로 했다’는 국정원 분석과 유사한 발언이었다.
독일 정부는 23일 주독일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를 초치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공식 항의하기도 했다. 독일 외무부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관련 보도가 사실이고,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병력으로도 지원한다면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같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