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찾아 중동 긴장 완화 노력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30일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지상전 개시 이후 첫 방문이자,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로는 벌써 11번째 중동 순방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전쟁 종식'이라는 블링컨 장관의 목표는 이번에도 달성되기 힘들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등 '저항의 축'(반미·반이스라엘 동맹)을 겨냥한 강공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등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25일까지인 중동 순방 일정의 첫 행선지로 22일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택했다. 그의 이스라엘행은 지난 8월 중순 이후 두 달 만이며, 중동 지역 방문도 지난달 18일 가자 전쟁 중재국인 이집트가 마지막이었다. 이번 중동 순방 목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인질 석방·휴전 협상 재개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 상황 개선 등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블링컨 장관 면전에서 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블링컨 장관과의 회동에서 대(對)헤즈볼라 전쟁과 관련, "레바논 지상전이 끝나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와 맞닿은)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할 때까지 모든 부대에 체계적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실제 이스라엘방위군(IDF)의 헤즈볼라 시설 파괴·지휘부 제거가 잠시라도 중단될 기미는 없다. IDF는 지난달 27일 폭살시킨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하솀 사피에딘이 지난 4일 공습에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날 밝혔다. 오리 고르딘 IDF 북부사령관은 "헤즈볼라는 모든 곳의 전투에서 패배 중"이라며 레바논 지상전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 성과도 자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블링컨 장관을 만나 하마스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 살해(16일)를 거론하며 "인질 귀환, 전쟁 목표 달성, 전후 계획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후 계획 마련 및 휴전을 촉구해 온 미국 정부를 향해 이 같은 언급을 내놓자 TOI 등 일부 현지 언론에선 '네타냐후의 전쟁 관련 입장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가자 북부를 포위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하라는 미국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강경 태세는 여전하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특히 지난 1일 이스라엘로 최소 181기의 미사일을 발사한 이란에 대한 보복 의지도 재확인했다. 갈란트 장관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후에도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 이스라엘은 지난 19일 헤즈볼라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깨진 네타냐후 총리 자택 창문 사진을 이날 공개하며 대이란 보복 분위기를 또다시 조성했다. 이 사건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헤즈볼라를 통한 이란의 이스라엘 총리 암살 시도"라고 규정했었다.
블링컨 장관은 중동 순방 기간 동안 '정세 안정화' 방안을 최대한 모색할 방침이다. 하지만 다음 달 미국 대선 이후에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국정 동력을 잃게 되는 만큼,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