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실험 장비 다 갖춘 포항, 바이오 메카 꿈꾼다

입력
2024.10.23 16:30
원자핵 분석 '방사광가속기' 국내 유일
코로나 규명 '극저온전자현미경'도 보유
포항공대·한동대 등 우수 연구진 포진
세포막연구소 등 벤처·창업 기반 탄탄
올 6월 국가 바이오 특화단지 지정
유망 바이오 기업 투자·입주 이어져

경북 포항의 경제자유구역이자 지난 6월 전국 첫 국가전략첨단산업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된 북구 흥해읍 대련리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 지난 16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포항공대(포스텍) 실험실 창업 바이오기업인 ㈜에이엔폴리가 이곳에 본사와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것. 내년 10월 말 완공하면 왕겨, 커피박 등 유기성 폐자원으로 친환경 나노셀룰로스를 생산한다. 융합지구에는 또 한미약품 그룹의 ㈜코리포항과 세계 최초로 식물서 추출한 단백질로 돼지열병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앱도 입주할 예정이다.

철강산업 메카 포항에 바이오 산업이 움트고 있다. 세계적 연구 역량을 갖춘 포스텍과 인근 바이오 연구 기관들이 포항시와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 바이오 생태계 조성에 공들인 결과다. 권혁원 포항시 일자리경제국장은 “포스텍과 최첨단 실험 장비가 즐비한 포항 남구 지곡동 지곡밸리에 벤처·창업 지원시설이 들어서고 포항 융합지구가 준공된 후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되면서 기업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포항이 국내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 최첨단 실험 장비 보유

포항시는 포항 융합지구 전체(면적 145만㎡)가 바이오 특화단지로 지정된 것은 국내 최고·세계적 수준의 우수 대학과 이와 연계한 연구개발(R&D) 시설을 꼽는다. 포스텍, 한동대 등에 우수한 연구진들이 포진해 있고, 국가연구시설이자 최첨단 실험 장비인 3·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국내 18대뿐인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보유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나노 크기의 물질까지 정밀 관측할 수 있어 꿈의 현미경이라 불린다.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를 가속시켜 나오는 방사광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분석한다.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도 방사광가속기로 개발했을 만큼 신약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될 장비다. 지난 1994년 국내서 처음, 세계 5번째로 제3세대형 가속기가 포스텍에 들어섰고, 약 20년이 지난 2015년에는 바로 옆에 3세대보다 1억배 밝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준공됐다.

이뿐만 아니다. 포항에는 단백질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극저온 전자현미경도 포스텍과 포항 융합지구 내 연구소에 설치돼 있다. 대당 8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첨단 실험 장비로, 코로나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를 규명해 백신 개발을 앞당긴 장비로 유명하다. 김민호 포항시 바이오미래산업과장은 “방사광가속기가 신약개발에 중요한 장비라면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백신개발에 꼭 필요한 최첨단 장비”라며 “포항은 방사광가속기를 보유한 국내 유일 지자체이면서 전국에 18대뿐인 극저온 전자현미경도 지자체로는 가장 많은 4대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벤처·창업 지원 시설로 생태계 활성화

포항시는 2015년 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에 힘입어 바이오 벤처·창업이 활발해 질 수 있도록 지원 시설을 대거 확충했다. 가속기를 이용한 신약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2020년 11월 포항 지곡밸리에 경북도와 포항시, 포스텍, 포스코와 제약 바이오 기업 ㈜제넥신이 힙을 합쳐 252억 원을 공동투자해 바이오 오픈이노베이션센터(BOIC)를 건립했다. 이듬해 5월에는 포항 융합지구에 바이오 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는 포항지식산업센터가 문을 열었다. 같은해 6월에는 포스코가 포스텍 내 벤처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포항체인지업그라운드를 준공했다. 또 300㎸의 고해상도 극저온전자현미경 1대와 200㎸짜리 1대를 갖춘 세포막단백질연구소가 포항 융합지구에 개소했다. 2022년 3월에는 농식품부가 식물에서 동물용의약품을 개발하는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를 포항 융합지구에 설립했고, 지난해 11월에는 포스텍 생명공학연구센터가 유전자세포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바이오미래기술 혁신연구센터(IRC)에 선정돼 국비 등 578억 원을 받게 됐다. 지난 3월에는 바이오프린팅으로 동물대체용 인공장기를 개발하는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가 포항 융합지구에 들어섰다.

포항시는 포항 융합지구에 벤처창업 거점시설인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를 구축하고 2027년 말에는 국비 지원을 받아 해양바이오메디컬 실증연구센터를 준공한다. 또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추세에 맞춰 지역내 상급병원의 진료데이터와 연계한 의료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바이오특화단지 지정으로 국가첨단전략산업진흥원 포항 유치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포항이 바이오산업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을 얻었다”며 “AI와 연계 바이오 융복합 산업 구축과 벤처기업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해 포항을 미국 보스턴과 같은 한국의 ‘바이오-메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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