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6) 할머니가 '제3자 변제' 방식의 피해배상 해법을 수용했다. 생존 피해자 중 가장 강력히 일본 정부 사과를 요구했던 양 할머니의 제3자 변제안 수용으로, 조속한 보상 절차 마무리를 원했던 정부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다만 치매를 앓던 양 할머니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이번 결정이 본인이 아닌 가족 의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23일 외교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양 할머니는 이날 대법원의 강제동원 확정 판결에 따른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받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은 이날 강제징용(동원)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해법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힌 생존 피해자 한 분에 대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했다"며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 피해자 15명 중 12명의 피해자와 유가족이 정부 해법에 따라 판결금을 수령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은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일본 피고기업들(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에 승소한 원고(피해자) 15명에게 재단에서 민간 기업 등의 기부금으로 마련한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단의 재원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도움을 받은 포스코가 기부한 40억 원을 바탕으로 조성됐다.
정부의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지금까지 원고 15명 중 11명이 이 해법을 수용했고, 이를 거부한 나머지 4명 중 생존자는 양 할머니와 이춘식(104) 할아버지 2명뿐이었다. 양 할머니의 수용 결정으로, 남은 수용 거부 피해자 및 유가족은 3명으로 줄었다.
다만 피해자 지원 시민사회 단체는 양 할머니 본인 결정인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1944년 일제에 강제징용돼,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양 할머니는 1992년부터 한일 양국을 오가며 강제징용 피해 증언에 앞장섰다. 지난해까지도 각종 관련 집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 구상을 ‘매국·굴욕 외교’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일본의 사죄가 우선돼야 한다. 일본이 무릎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민사회 단체는 양 할머니의 결정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지난해 11월부터 요양병원에 입원한 양 할머니의 의지로 수령(수용)이 결정된 것인지 모르겠다"며 "현재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