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 어디서든 10분 만 걸으면 유적과 숲을 만날 수 있어요”

입력
2024.10.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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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주 액티브 시니어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 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_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이용호 경주시니어클럽 문화유산 해설사 : 경주에서 태어났고 1970년대 부산 대우실업에 근무했다. 83년 경주로 돌아와 농기계 판매 사업을 하다, 60세 되는 2006년에 정리했다. 그해부터 2년간 야간 대학에 등록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경주 문화유산 해설사를 시작했다.

김정란 란 갤러리 대표 :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를 했고, 국립서울병원, 중앙대병원, 서울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1989년 동국의과대학 설립 초창기에 병리학실 첫 주임교수로 부임하면서 경주와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서 꾸준히 서양화 작업을 병행하며 가끔 전시회도 열었다. 은퇴 무렵 경주에 계속 살기로 결정한 후 화실 등 활동 공간으로 구입한 주택 주변이 황리단길 관광지로 변하면서 갤러리로 개조해, 작업실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_경주는 큰 기업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경주에 정착한 은퇴자들은 어떤 이유로 경주를 선택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 : 경주에는 한수원이 있고 포항, 울산 등 큰 기업이 있는 도시가 가까이 있다. 그쪽에서 은퇴하고 이곳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인 중에는 부산에서 교수로 은퇴하고 경주에 정착한 분도 있다. 은퇴했다고 거주지를 멀리 옮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경주가 살기 좋아 선택했다는 분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은퇴 후에도 살던 곳, 익숙한 곳에 정착한다.

_경주는 국내 제일의 문화유산 도시인 만큼 은퇴 후 해설사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을 거 같다.

이 : 전체적으로는 300명가량인데 이 중 시니어가 100명 내외다. 해설사가 되는 경로는 다양한데, 개인적으로는 경주시니어클럽이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진행하는 해설사 모집을 통해 시작했다. 먼저 주 2시간씩 3개월간 총 24시간 교육을 받았다. 이후 실습을 거쳐 해설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걸로 부족하다고 느껴져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대학 6개월 과정을 이수했다. 그 후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에 입학해, 문화 해설사 일과 병행하며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김 : 은퇴 후 나도 박물관대학에 다니고 있다. 수강생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연배로 교사 출신이 가장 많으며 졸업 후 문화 해설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즐겁게 머리를 채우는 느낌으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평생 강의를 해왔던 눈으로 보더라도 강의 수준이 매우 높아, 감탄할 정도였다. 이런 유형의 적절한 강의를 개설하고 홍보한다면 더 많은 은퇴자들이 경주를 찾을 것이다.

_시니어의 입장에서 경주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듣고 싶다.

김 : 경주는 좋은 점이 많은 곳이다. 조경 전공 교수님이 높은 건물들이 적어 평탄해 보이는 전경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하던데, 경주가 바로 그런 마을이다. 문화재 관련 고도 제한 때문에 도심에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다. 또 숲이나 공원 등이 많아 경주 어디에 있든 5분 이내에 걸어서 이런 공간을 찾을 수 있다. 단점은 젊은 세대를 위한 문화적 콘텐츠나 일자리가 부족하다. 서울에서 경주로 직장을 옮겼던 동료들이 여러 이유들로 하나둘 서울로 돌아갈 때 혼자 남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이 : 은퇴자를 기준으로 해 이야기를 하니 막히는데. 경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인구가 소멸하며 도시 전체가 활력을 점차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이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북적거리는 이곳 황리단길도 큰길만 조금 벗어나면 여전히 썰렁하다.

_경주에 오래 살았는데도 같이 경주에 온 직장 동료가 떠나면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여전히 외지인으로 느낀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김 : 그동안 이웃 주민과 소통할 여유 없이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며 살아온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주민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지 않았던 점도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경주만의 이너서클이 존재하기도 한다. 지명이 ‘주(州)’로 끝나는 역사가 깊은 고장은 대부분 그렇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이런 폐쇄성이 주민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가치관과 강한 유대감 등이 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런 문화를 존중하지 않을 때 반감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주 초기 경험 중 아직도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아파트 단지 주변 상가의 안내 책자를 아파트가 아니라 오래된 동네에 주로 배포하는 모습이었다. 정작 그런 정보가 가장 필요한 아파트 주민들은 그 책자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보다 오래 살아온 주민을 우선시해야 사업이 유지되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또 밤 9시가 되면 대부분 집들이 불을 끄고 길거리에 차도 다니지 않는 풍경도 낯설었다. 어느 곳이든 외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그 지역 주민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 경주에 정착한 외지 출신들로부터 “경주 살기 참 어렵다. 30~40년 살아도 무늬만 경주지 경주 사람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관장님 말처럼 이런 문제는 양자 모두의 책임이며, 얼마든 해소할 수 있는 일이다. 큰 병을 치료할 병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은퇴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은퇴자가 살기 좋은 마을이라면 젊은 사람들도 살고 싶은 마을이다. 경주가 그런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막연히 은퇴자가 내려와 정착할 것이라고 기대할 순 없다.

글 사진 정영오 논설위원
정리 변한나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