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을 한글 현판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한자로 쓰인 현판은 아무래도 거슬린다.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된 광화문에 우리 글이 아닌 한자로 된 현판은 문화적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한글학회와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요구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긍정적 검토를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며 "우선 당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고,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의 입장은 원형 유지의 측면과 국민적 공감대 차원에서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광화문 현판은 여러 번 불타고 복원돼 원형이 분명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현재 복원된 글씨는 경복궁 정문을 광화문으로 명명할 당시의 세종대왕 글씨도 아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중건과 함께 광화문을 재건할 때 공사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소실된 광화문을 1968년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2010년 목조 구조로 복원하면서 다시 임태영의 글씨체로 복원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유산청이 주장하는 원형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공감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2020년에 한글문화연대에서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국민 61%가 지금 한자 현판이 걸린 광화문 정면에 한글 현판을 걸자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상징적 장소인 광화문의 한문 현판은 외국인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지속적인 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 국민들의 공론을 수렴해야 할 소이가 여기에 있다.
광화문 현판의 한글화는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변경한다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을 숙고해주기 바란다. 한글은 작은 중화를 벗어난 자주 문화를 상징한다. 세종은 만백성이 훈민정음을 통해 글을 깨우쳐 책을 읽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참된 복지라고 생각했다. 백성들이 스스로 깨우쳐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참된 자유의 정신이다. 오늘날 한류에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것도 한글 창제의 정신과 면면이 연결돼 있는 것은 아닐까? 1960년대 하버드대 라이샤워(Reischauer) 교수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기록 체계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 공로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에 세종대왕의 이름을 붙여 시상하고 있다. 우리가 한글 현판을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국가유형문화재에 대한 역사적·문화적인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공론화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광화문 현판이 가지는 문화적 정체성과 한류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세종정신을 복원해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민주의 광장, 문화의 광장을 상징하는 광화문 현판이 예쁜 훈민정음체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