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외부 판단을 듣기 위해 만든 위원회의 다수가 1년에 딱 한 차례만 열리거나, 아예 한 번도 열리지 않는 등 활동이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업인 수사가 부진하니 외부 판단을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 산하 위원회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3일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공수처로부터 제출받은 '공수처 산하 위원회 현황'(2021년~올해 9월)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공소·행정 분야에서 위원회 총 12개를 운영 중이다.
이 중 수사와 직접 연관이 있는 수사·공소 분야 위원회(6개)는 다섯 차례 열렸다. 특히 외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처·차장이 모두 없었던 올해 5월 8일 단 1회만 열렸다. 오동운 처장과 이재승 차장 등 2기 지휘부가 임명된 후에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공소제기(기소)와 공소제기 요구, 불기소 여부, 무죄 판결 등에 대한 상소 여부를 논의하는 공소심의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다른 위원회 실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 1~9월 개최 실적과 올해 공수처 예산안에 담겼던 개최 예상 횟수를 비교해보면, 수심위 1회(계획 12회), 영장심의위 0회(계획 3회), 공보심의위 3회(계획 7회), 내부고발자구조심의위 0회(계획 3회), 감찰위 1회(계획 3회), 공소심의위 0회(계획 8회)로 6개 위원회 모두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위원회가 안 열리니, 잡히기만 하고 쓰지 못하는 예산도 많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공수처 위원회 예산 집행률이 7% 수준인 점을 거론하며 "불용예산(쓰지 않은 예산)이 많다"고 지적하며 올해 예산을 절반가량 깎았다. 올해 수사 관련 심의위(수심위, 영장심의위, 공보심의위, 감찰위, 내부고발자심의위) 운영에 전년 대비 1억4,100만 원 줄어든 9,300만 원이 배정됐고, 공소심의위 예산은 2,600만 원을 감액한 2,700만 원만 편성했다. 올해도 12차례 개최 계획을 세웠던 수심위는 1회만 열려, 위원 참석 수당 등 279만 원만 집행됐다.
법조계에선 공수처의 초라한 수사 성적이 이 상황을 초래한 것으로 지적한다. 수사가 잘 되지 않으니 안건으로 올릴 만큼 첨예한 현안 쟁점 자체가 없다는 거다. 한 현직 수심위원은 "사건이 많아져야 안건이 생길 텐데, 항상 형식적이거나 일반론적인 것만 다룬다"며 "수사 실적이 없는 탓"이라고 꼬집었다. 올 5월 열린 수심위에 참석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구체적 사건을 다루지 않고 기구 설치나 업무방향 등 큰 틀의 논의만 하고 끝났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불필요한 위원회의 폐지 의견까지 나온다. 실제로 공수처는 수사자문단을 수심위로 합쳤다. 한 공수처 외부 위원은 "위원회는 한두 개만 있어도 된다"며 "위원회 예산이 깎일까 봐 회의를 일부러 여는 감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 처장은 취임 이후 '위원회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현재 구체적 안을 마련 중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방안을 연내 실행으로 옮길 계획"이라며 "최소한 공수처가 요청해서 받은 예산은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진우 의원은 "세금만 낭비하는 공수처 위원회를 병합하는 등 예산을 내실 있게 사용해야 한다"며 "다가오는 예산 심사 과정에 이러한 점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