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해진 여론조사 조작의혹, 수사로 진상 밝혀야

입력
2024.10.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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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의 제보자 강혜경씨가 그제 국회에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 데이터를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김영선 전 의원 회계책임자인 강씨는 지난 대선 때 이렇게 만들어진 여론조사 자료를 보고받은 윤석열 당시 후보가 흡족해했다고 명씨의 말을 인용해 주장했다. 당시 여론조사 비용이 무려 3억7,500만 원에 달한다는 점은 이 문제의 폭발성을 예고한다. 강씨가 밝힌 여론조사 조작과 결과의 보고 과정, 이를 매개로 한 '공천 장사' 의혹을 검찰이 엄중히 밝혀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여론조사 비용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를 진행 중인 창원지검이 늑장을 부린다고 의심받아서도 곤란하다.

앞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문재인 정부의 드루킹 사건이 있었지만 여론조사 조작은 그 파괴력과 죄질이 훨씬 심각한 일이다. 더구나 명씨가 2021년 9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때 윤 후보의 수치가 더 나오게 해야 한다고 지시한 녹취록이 공개된 마당이다. 공표하지 않았더라도 여론조사 데이터를 조작한 건 정치공작이자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강씨는 명씨와 거래한 정치인 27명을 공개했는데 해명과 반박에도 불구, 명씨가 실질 운영하는 미래한국연구소가 이들과 관련된 비공개 여론조사를 한 의혹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4월 22대 총선 때 등록된 여론조사 2,531건 중 1,524건(60.2%)이 사전신고를 면제받았다. 여론조사 계획을 미리 신고하지 않으면 조작이 더 용이하다. 명씨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창원지역 인터넷 언론사 의뢰란 형태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사전신고를 피해 갔다. 지금의 여론조사 시장 지형상 명씨와 같은 사례가 없다고 단언하기 힘든 것이다.

지난주 부정 여론조사 업체를 영구 퇴출시키는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된 건 매우 고무적이다. 선관위도 여론조사 사전신고 의무대상에 모든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시키는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조작된 데이터를 내세워 이권을 챙기는 브로커, 특정 후보에 치우쳐 ‘텔레마케팅’이나 다름없는 조사 모두 선거의 공정성과 민주주의 원칙을 흔드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조작하는 현실을 근절하는 해법을 여야가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