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갔으면 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이태원 참사 기록집 출간

입력
2024.10.23 04:30
22면
책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생생한 증언

"저는 '놀러 가서 죽었다'는 말이 너무 화가 나요. 놀러 갔으면 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 놀러 가서 죽었다는 건 상황을 왜곡하는 말일 뿐이에요. 그날 이태원에 놀러 간 사람들 모두 살 수 있었어요. (···) 그때 차도 하나만 터줬어도 다 살았을 거예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씨 어머니 신지현씨)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희생자 유가족의 참사 이후의 삶을 담아낸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가 출간됐다. 작가와 활동가들이 결성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희생자 21명의 유가족을 만나 인터뷰했다. 1주기 때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의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 이은 두 번째 구술집이다.

작가기록단으로 참여한 정인식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는 22일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인 서울 중구 별들의 집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참사를 통해 드러난 사회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참사는 그 시간, 그 장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다시 우리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가족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안전 사고를 예방하고 참사에 대응하는 데 있어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그 안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이 얼마나 무력했을지를 절감한다. 이날 기자회견에도 참석한 이재현(당시 16세)군의 어머니인 송해진씨의 목소리는 부실한 재난심리지원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이태원에 함께 갔다가 여자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 2명을 잃은 이군은 참사 후 43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가 얘를 정말 잘 보살펴야 되고 평소와는 다른 뭔가를 해 줘야 될 것 같은데,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 막연함, 그 공포. 미치겠는 거예요. 1분 1초가. (···) 현이는 가장 소중한 친구 둘을 잃은 상황이었는데 정부에서는 진료비 하고 약값 청구하면 주겠다는 안내밖에 없었어요. (···) 보건복지부 통합심리지원단에서 트라우마센터라는 게 있다는 안내 문자가 하나 오긴 했죠. 저 혼자 사방팔방으로 정보를 찾았어요." 이군은 정부가 인정한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마지막 희생자다.

"아무도 연락 없어" 고립감 겪는 외국인 유가족들

이번 책에는 외국인 희생자 2명의 유가족도 참여했다. 호주인인 그레이스 래치드의 어머니와 이란인인 알리 파라칸드의 고모와 어머니다. 이태원 참사의 외국인 희생자는 14개국 26명. 의사소통과 물리적 거리의 한계가 있는 외국인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다 관련 소식과 단절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레이스의 어머니인 조앤 래치드는 책에서 한국 정부의 참사 대처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이런 일을 겪는 게 우리만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그래도 정말 단 한 번도 우리 상황을 체크한 사람이 없어요, 단 한 번도. (···) 아직 생생하게 제 안에서는 살아 있는 일이고 진행 중인 일인데 저희끼리 알아서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온라인으로라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찾아보고 읽어 보고 했어요. 한국에서 대체 뭘 하는지, 한국의 법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호주 변호사까지 찾아갔었어요."

조앤은 관련 수사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호주에서 한국의 영자 신문들을 살펴보던 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라는 책의 출간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을 읽어 보고 싶어 출판사 웹사이트에 기재된 이메일 주소로 무작정 메일을 보냈고, 그러면서 작가기록단과 연락이 닿아 이번 기록집에 참여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꼭 읽었으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말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송해진씨)"며 이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하소연이 아닌 다음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신지현씨)" 때문이라고 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누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윤석열 대통령을 꼽으며 "지도자로서 국민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꼭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