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국정 위기 속 '한동훈 모욕 주기' 할 때인가

입력
2024.10.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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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 이후 여당 의원들과 만찬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자리에 여당 2인자인 추경호 원내대표도 불렀다고 한다. 한 대표의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가 불편할 수 있지만, 국정을 논의한 면담을 성과 없이 끝낸 뒤 여당 대표만 빼놓은 채 여당 의원들과 식사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여당 대표로서 인정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번 면담은 한 대표의 독대 요청에 대통령실이 일정상 이유를 들어 비서실장이 배석하는 차담으로 변경한 자리였다. 대통령실이 국정 난맥 해결을 위한 여권 1, 2인자의 회동을 오후 4시 30분에 잡은 것은 빈손 면담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의 저녁 일정을 감안하면 이견이 큰 사안에서 합의를 도출하기엔 촉박한 시간인 탓이다. 결과적으로 이견만 확인했고,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민심의 쓴소리를 전하는 자리도 외교 일정이 아닌 여당 의원들과의 식사에 밀리고 말았다. 약속시간마저 늦춰 한 대표를 20분 서서 기다리게 했다니 윤 대통령의 박절함만 보여준 면담이었다.

한 대표에 대한 홀대는 의전과 윤 대통령의 반응에서 확인된다. 대통령의 면담 상대인 여당 대표를 비서실장과 나란히 앉혔고, 면담 장소도 접견실이나 회의실이 아니었다. 면담 전 산책에는 한 대표가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한 비서관이 동행했다. 처음부터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의 동떨어진 현실 인식은 여전했다.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요구엔 "이미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고, 대통령실 인적쇄신엔 "누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전달해 달라"고 했다. 김 여사 특검법에는 "우리 당 의원이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어쩔 수 없다"며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이 민심 수습을 위해 선제적 조치에 나서도 부족할 판에 선문답만 반복한 것이다.

여론의 냉담한 반응에도 "면담 분위기가 좋았다"는 대통령실 자평에서 위기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대표를 겨냥한 '모욕 주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로 인해 민심으로부터 고립되는 쪽은 윤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