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입은 무겁고 명태균의 입은 가볍다. 두 화제의 인물은 모두 1970년생이다. 한강과 명태균은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그들이 남긴 흔적과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다.
한강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한국 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잔치를 벌여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국내외 모든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고 취재를 구했음에도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는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임을 말하고 떠들썩한 잔치나 인터뷰를 자제했다. 며칠 지난 후 작가는 첫 수상소감을 밝히며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란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를 위한 문학관 건립도 완곡히 거절하며 대신 책을 많이 사고 읽는 시민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펴달라고도 하였다. 인격이 묻어나는 행보다.
작가의 깊은 사유와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 모습은 그의 소설에도 그대로 나타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문학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그가 평화를 호소하며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내용 중 6·25전쟁을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평가한 문구가 담긴 일부 내용을 문제 삼거나, 광주 5·18,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이 불편하다는 내색을 감추지 않는 언론과 정치인, 작가들은 또 다른 불편감을 자아낸다. 다양성과 다원성이 있는 사회이니 건강하다고 보이기보다는 잔칫상에 재 뿌리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탁월한 문학작품의 상당수는 당대에서 논쟁적이다"라는 윤태곤의 말로 위안을 삼는다.
명태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른다. 사업가 또는 언론인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현재는 정치판의 이면에서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이건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정치가 막춤을 추고 있다. 연일 언론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정치의 이면에서 벌어진 일들을 언론 인터뷰와 페이스북을 통해 쏟아내고 있다. 한국 정치는 늘 그렇듯 두 편으로 갈라져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명태균의 말과 글을 이용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그를 추악한 이면의 폭로자로 추앙하며 영웅시하고, 한쪽에서는 사기꾼 또는 범죄자로 취급한다. 그는 2,000여 개의 녹음파일 존재를 과시하면서 틈틈이 한국 정치에 대한 조롱과 폭로를 이어간다. '내가 사기꾼이면 너희들은 뭐냐? 사기꾼을 사기 친 니놈들은 뭐냐?'며 페이스북을 연일 달구고, 특정 정치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저격하고 있다.
국정감사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 국정 전반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도 '명태균'의 입에 놀아나고 흔들리며, 공천 개입 의혹을 키우거나 이를 방어하기에 급급한 정쟁으로 오염되고 있다.
명태균의 '묻지마식 폭로'가 한국 정치에 큰 파문을 불러오면서 정치의 권위와 신뢰는 추락하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것은 확실시되지만, 그로 인해 한국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에 반해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자신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한국 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렸고, 개인의 고통과 내면에 몰두하거나,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깊게 파고들어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함으로써 결국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대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두 인물을 통해 나는 '1970년생의 빛과 그림자'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희망의 빛을 따라갈 것인가? 그림자 놀이에 빠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