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으로 위고비 처방 원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초 만에 '뚝딱'

입력
2024.10.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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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치료제 위고비 비대면 처방 실태]
비대면 진료 앱, 처방 기준 무관 진료 가능
'위고비 처방 꿀팁' 등 온라인서 정보 공유
약사회 "비대면 진료 금지 대책 마련해야"

"위고비 처방 원하시는 거죠?"

"네."

"세 개까지 처방 가능한데 몇 개 드릴까요?"

"한 개 주세요."

21일 기자가 한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의사와 나눈 통화 내용이다. 얼마 전부터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한 '꿈의 비만약' 위고비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성인용 전문의약품이다. △BMI(체질량지수·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 △고혈압 등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동반질환이 있으면서 BMI 27 이상인 과체중 환자만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니 기준 BMI에 못 미치는 기자가 위고비를 처방받는 데 아무 제약이 없었다. 해당 의원은 비만과 무관한 이비인후과의원으로, 의사는 BMI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정보인 키나 몸무게도 묻지 않았다. 투약법·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없이 30초 만에 '뚝딱' 처방이 마무리됐다.

위고비 출시 전부터 우려됐던 비대면 진료를 통한 무작위 처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비대면 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2월부터는 전면 허용했는데 엉뚱하게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위고비를 단순 다이어트약으로 오남용했다간 건강을 해칠 수 있어 관계 당국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비대면 진료 앱 5곳 모두 쉽게 위고비 처방이 가능했다. 5곳 모두 진료 통화 시간은 2분을 넘기지 않았고, 처방 기준 BMI에 미치지 않아도 문제없었다. 일부 앱에선 키와 몸무게 기재 없이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한 앱에서 '다이어트 비대면 진료'를 클릭하자 어떤 약을 처방받고 싶은지 선택하는 화면이 등장했다. 위고비로 추정되는 '주 1회 맞는 다이어트 주사 처방'을 클릭하니 의사 목록이 나타났다. 산부인과, 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의 의사가 위고비 처방이 가능했고, 진료비는 5,000원에서부터 2만 원 내외였다.

진료 예약을 하자 의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의사는 투여 용량과, 투약 분량을 묻고 진료를 마쳤다. 이렇게 받은 처방전으로 약국 지도를 클릭하자 서울 시내 수십 곳의 판매 약국이 나왔다. 가격은 최저 48만 원에서부터 최고 69만 원까지 편차가 있었다. 한 약국을 선택해 처방전을 온라인으로 전송한 후 방문하자 쉽게 위고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몸무게 높게 말하고, 성지 찾고... 위고비 후기 확산

온라인에서도 '비대면 위고비 처방 후기' 관련 글이 확산하고 있다. 한 온라인 카페에 "비대면 진료 신청하고 전화 받았는데 몸무게와 키를 물어봐서 그대로 말했더니 BMI(가 낮고) 고혈압이 없어서 처방이 안 된다네요"라는 글이 올라오자 "그래서 저는 비대면 처방 받을 때 무조건 몸무게 높게 말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값싸게 위고비를 구할 수 있는 약국에 대한 관심도 쏟아졌다. "성지(시중가보다 저렴한 판매처를 뜻하는 은어) 방문해서 위고비 1개 48만 원에 구매했다"는 게시글엔 '성지' 정보를 부탁한다는 댓글이 20개 넘게 붙었다.

그러나 단순 미용 목적 사용 등 오남용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7월 아이슬란드 의약품청은 위고비의 자살 위험성을 처음 제기했다. 또 임상시험 결과 두통, 구토, 설사, 변비, 담석증, 모발손실, 급성췌장염 등의 부작용도 보고됐다. 탈수로 인한 신장기능 악화, 급성 췌장염, 당뇨병(제2형) 환자의 경우 저혈당·망막병증 등도 발생할 수 있어 기저질환 환자는 신중히 투여해야 한다.

대한약사회는 사후피임약과 같이 위고비를 비대면 진료 처방 불가 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은혜 약사회 홍보이사는 "위고비 같은 비급여 의약품의 경우 처방 기준을 안 지켜도 의사에게 아무런 페널티가 없다"며 "국민 건강을 위해서 비급여 약을 비대면 진료로 처방받지 못하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운 기자
이정혁 기자